◆ 중국 초고속 성장의 그늘 '농민공'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엄마! 아빠! 돈 필요 없어요. 제발 돌아와서 저희와 살아요!” 중국 CCTV가 춘절(우리의 구정)을 맞아 방영했던 프로그램에서 중경시의 시골마을 초등학생이 외지로 일하러 간 부모에게 울면서 하는 말이었다. 그 말에 그 아이와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던 아이들이 모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어떤 어린 아이는 부모를 못 본 지 3년도 더 되었다고 하면서 부모님 기억이 희미해질 정도라면서 울고 있었다. 젊은 아들과 며느리가 외지에 돈 벌러 간 농가들에서는 대부분 노인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어느 한 노인은 “이제 자식들이 돌아왔으면 한다. 나도 이제 힘이 없어 아이들을 돌보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장면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기자가 북경에서 한 농민공을 인터뷰하면서 춘절인데 왜 집에 돌아가지 않느냐고 물으니까, 농민공이 슬픔과 노여움이 겹친 목소리로 “돌아갈 돈이 어디 있느냐? 우리도 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방영된 농민공 가정의 형편은 중국경제를 상징하는 특급도시들의 화려한 모습에 가려져 우리가 잘 모르던 농촌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농촌에서 농사를 짓지 않고 외지로 나와 6개월 이상 근무하며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중국에서는 농민공(農民工)이라 부르는데 경제성장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방송이었다.
중국경제는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한 이후 줄곧 고속 질주하여왔다. 한국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한강의 기적을 구가할 때 농촌인구의 대거 도시유입과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농촌출신 공장근로자들이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제조공장 역할을 해 온 중국은 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외국기업들을 유치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지금의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되었다. 물론 중국의 고속 경제성장 과정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정책과 수출주도형 무역정책 등 수 많은 요소들이 큰 기여를 하였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농민공들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이 장기간 막대한 저임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중국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해 온 것이다.
중국 베이징 빈민촌 상팡춘에 거주하는 농민공들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팥소 없는 찐빵인 만터우와 싸구려 야채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 중국 농민공만 3억, 한국 인구의 6배 육박
중국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농민공의 숫자는 1.3% 늘어난 2억 7747만 명이었다. 우리나라 인구의 다섯 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대병력이다. 그 중에서 주민등록(호적)이 있는 고향지역을 떠나 타 지역으로 가서 일하는 농민공은 1억 6884만 명이었으며, 고향지역의 도시나 읍에서 일하는 농민공은 1억 863만 명이었다. 고향이 속한 행정구역에서 일하는 농민공의 경우는 구정이나 다른 명절 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 문제는 고향을 떠나 외지로 나가 일하는 농민공들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아이들과 떨어져 살고 있으며, 명절에 집으로 돌아가기도 수월치 않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거대한 이산가족이 중국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서부의 중경이나 사천성, 중부의 안휘성, 호남성 등의 경우 많은 농민공들이 고향을 떠나 경제가 발달한 광동, 상해, 절강, 북경 등 동남부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자기가 속한 성이나 직할시의 도시지역으로 계속해서 이전하고 있다.
◆ 도농 소득 격차 2.73대 1...농공병진 실패의 후유증
중국경제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딜레마 중의 하나가 감소하는 노동력과 노령화되는 농민공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중국사회에서도 많은 연구와 대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부모와 떨어져 살고 있는 농민공 자녀들이 수 천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 이들 중 많은 아이들이 정서불안을 겪고 있거나, 조부모의 노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농민공의 자녀들의 정상적인 성장, 복지, 교육문제는 중국이 안고 있는 아킬레스건의 하나가 되고 있다. 발달된 도시로 몰려드는 농촌인구를 그대로 놔둘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인 중국에서는 여전히 농촌주민들의 도시로 거주이전이 제한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도시에 사는 농민공들이 자녀들을 도시에 데리고 와서 같이 살기가 쉽지 않다. 우선 거주문제도 문제이거니와 아이들의 상급학교진학이 쉽지 않고, 의료보험 등 사회보험의 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소득이 많지 않은 농민공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헤어져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가 공식 통계상으로 2.73:1정도 되지만, 사실 원래 도시민과 농촌에서 올라온 농민공 사이의 소득격차는 더욱 벌어져 있는 현실에서 이들 도시의 농민공들은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문제를 여하히 잘 해결하느냐가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상당히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으며, 중국정부 역시 이를 해결하기위해 농촌, 농민, 농업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삼농정책(三農政策)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중국 진출 한국기업들, 中 농민공 따뜻한 배려를
고향을 떠나 이산의 아픔을 감수하면서 도시생활에 나서고 있는 농민공들의 상당수는 학력이 높지 않아 일반기업의 노무자, 가정부, 음식점이나 상점의 일용직 직원, 운전수, 막노동자 등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기업이나 한국인들은 이들을 가능한 한 따뜻하게 감싸 주어야 한다. 고용하고 있는 농민공들에 대한 급여나 복지혜택에 너무 짜지 않도록 해야 함은 물론 이들이 한국기업, 한국인들에 대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늘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들을 대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길게 보면 한국에 대한 호감을 중국국민들의 가슴 속에 깊이 심어주는 것이며, 우리기업들이 중국에서 활동하는데 도움이 되는 길이다. 현지 진출기업들이 나름대로 잘 하고 있는 사회적 책임(CSR)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사실은 직장내에 있거나 이웃하고 있는 농민공들을 잘 보살펴 주는 것이 아닐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