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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가(步行街·차 없는 거리)의 경제학

곽복선(郭福墠)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입력 2016-11-05 17:11
베이징(北京)의 왕푸징(王府井), 상하이(上海)의 난징루(南京路), 충칭(重慶)의 제팡베이(解放碑)하면 즉시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까? 있다면 중국을 꽤나 아는 사람이다. 한국 소비의 일번지 명동과 중국소비의 일번지 왕푸징과 난징루는 똑같이 내외국인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자 일정 지역의 차량통행을 제한하는 ‘차 없는 거리’, 중국어로 ‘부싱제(步行街·보행가)’다. 각 대도시의 주요 상점이 집중된 곳으로 중국의 젊은 소비층의 소비성향과 유행을 바로 볼 수 있는 곳이다.

◆ 중국판 ‘차 없는 거리’ 步行街는 소비의 중심

중국의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상하이(上海), 충칭(重慶) 4개 직할시와 성정부(省政府) 소재지를 포함하는 291개의 지급시(地級市)에는 시내중심이나 신개발지역에 대부분 보행가가 있다. 난징(南京)처럼 대표적인 보행가가 없는 도시도 있지만 청두(成都), 우한(武漢), 정저우(鄭州)같은 각 성의 성 정부가 있는 성회(省會) 도시들과 지급시 역시 대부분 지상의 상권인 보행가를 구도시 중심 또는 신개발 지역에 조성하고 있다.
중국의 도시들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형태의 보행가를 만든다. 옛 문물이나 건축물이 있는 지역을 보행가로 만들거나 그 도시의 소비중심 역할을 하는 지역을 보행가로 만들고 있다. 지방정부들은 보행가를 그 도시를 알리는 랜드마크 지역이자 실질적인 소비중심, 관광중심지로 만들어가고 있다. 도시화를 통한 경제발전정책의 또 다른 일면이 바로 보행가 조성을 통한 소비와 관광의 진작이라고 할 수 있다.
충칭의 보행가 제팡베이 거리
◆ 생생한 첨단 소비 트렌드는 보행가에서 체크를

중국의 도시를 알려면 반드시 보행가를 걸어보아야 한다. 그것도 저녁에 말이다. 그 도시의 소비 트렌드를 직접 몸으로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심부와 변두리의 소득격차가 3~5배 이상 벌어지는 중국의 도시들이 우리의 시장인 비즈니스맨들로서는 살아있는 현장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보행가가 그 도시의 중심부에 있기 때문에 그 도시의 경제상황을 눈대중으로 알 수 있는 생생한 ‘자료’가 된다.

◆ 통계자료 신빙성 부족, 보행가 등 현장에서 보충

필자처럼 중국경제를 다루는 사람에게는 신뢰도가 높지 않을지라도 중국정부가 발표하는 통계에 의존하여 중국경제를 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늘 현장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와 같은 통계의 현장감 부족을 보강하는 한 방편으로 관련 산업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기업가들을 만나거나 도소매 시장을 돌아보곤 한다. 이러한 것 외에도 출장지역의 도시중심부를 걸으면서 그 도시와 사람들을 살펴보곤 한다.

필자가 중국출장을 가게 되면 빼놓지 않고 체크하는 곳이 출장지 도시의 보행가다. 시간이 나는 대로 보행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상점 안에 들어가 물건을 사는 척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관심 있는 제품의 가격을 체크해 보거나, 중국소비자들의 행동을 살펴보곤 한다. 마트에 들어가면 카운터 가까운데 서서 소비자들이 산 물건들과 지불하는 금액이나 지불방식을 눈여겨본다. 한참 지켜보다보면 젊은 층과 나이든 층의 대금지불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구매상품도 어떤 것들이 그 마트에서 잘 팔려 나가는지 등 잡다하지만 재미있는 정보들도 얻게 된다. 신문, TV보도나 현지 지인들이 알려주는 정보와는 또 다른 현장의 느낌을 통한 정보를 얻는 데는 상가가 밀집되어있고 인구유동량이 많은 보행가 만한 데가 없다.

출장지에서 업무를 보고 숙소로 돌아온 후에는 반드시 택시를 타고 운전기사에게 ‘보행가’로 가자고 하면서 도시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본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지만 운전기사들은 여간 박식한 것이 아니다. 슬쩍 요즘 경기가 어떤지 물어보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가끔 공산당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기사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때 중국어로 네 뜻에 동조한다는 말을 건네면 신이 나서 더욱 많이 이것저것 알려준다. 택시 값을 뽑고도 남는 경제와 정치에 대한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잘 쓰지 않던 중국어연습도 되니 출장자에게는 일석이조이다. 대도시는 대부분 지하철이 있으며 중심지역의 지하철역이 보행가와 직접 연계된 경우가 많다.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보행가로 나가보면 어느 새 거리가 붐비기 시작한다. 중국인들의 또 다른 일상이 시작되고 있다. 출장자로선 현장 정보사냥이 시작되는 시간인 것이다. 한번 보행가를 걸어보라! 새로운 중국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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