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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재벌 굴기, 세계를 휘젓다.

곽복선(郭福墠)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입력 2016-10-07 07:10
중국 칭다오에 위치한 하이얼 본사 (출처: 하이얼 홈페이지)
1984년 자그마한 냉장고 제조업체로 출발한 하이얼(海尔)은 2009년 세계 가전업체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선 이후 줄곧 정상의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중저가 제품만 생산하던 바오산(寶山) 철강은 최근 자동차용 냉연강판 등 강자로 올라서더니 최근엔 우한(武漢) 철강과 합병을 선언, 세계 2위 철강업체로 발돋움했다. 2002년 하이닉스의 TFT-LCD 자회사인 하이디스를 인수해 디스플레이 사업을 시작한 징둥방(京東方·BOE)은 이미 한국의 삼성을 따라잡고세계 1위인 LG전자를 넘보고 있다. 징둥방은 세계 시장 점유율은 2위지만 생산량으로 따지면 이미 세계 1위다.
중국 선전 외곽에 위치한 비야디 본사 (출처: 비야디 홈페이지)
 중국의 비야디(比亞迪·BYD)는 이미 세계 1위의 전기자동차 업체다. 1999년 중국의 기업체와 국외의 구매자를 연결하는 기업 대 기업(B2B) 사이트로 소박하게 출발한 알리바바(阿里巴巴)는 현재 전자 상거래 분야에서 세계 1위다. 메신저 QQ로 유명한 텅쉰(腾讯, 텐센트·Tencent)은 세계 1위의 인터넷 포털 기업이다.
중국 항저우의 알리바바 본사 (출처: 알리바바 홈페이지)
‌‌세계 1위의 인터넷 게임업체로 바이두(百度) 알리바바와 함께 중국의 인터넷 업계의 삼두(三頭)마차다. ‘짝퉁 애플’로 비아냥 거리였던 중국의 샤오미(小米)는 화웨이(華爲)와 함께 중국의 스마트폰 강자로 올라섰다. 세계 1위의 PC 제조업체인 롄상(聯想,레노버·lenovo)은 최근 세계 1위의 반도체업체인 한국의 삼성전자를따라잡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최대의 부동산 회사인 다롄완다(대連萬達)는 복합쇼핑몰 등 유통업계의 강자로 등장했다.

◆ 중국의 재벌기업, 곳곳에서 세계 최고 강자로

중국의 재벌기업이 세계시장을 휘젓고 있다. 물량만 많지 ‘짝퉁’이나 생산하는 중국은 과거의 얘기다. 품질은 세계 일류로 올라섰고 가격은 개발도상국 수준이다. 세계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낮은 노동력을 바탕으로 기존의 세계 시장 판도를 완전히 바꾸고 있다. 올해 포춘지가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엔 중국기업 98개가 이름을 올렸다. 대만, 홍콩을 포함한 중화권 기업은 110개나 된다. 세계 500대 기업의 22%가 중국 기업이다. 세계 5대 기업 안에는 국가전망(國家電網), 중국석유(中國石油), 시노펙(中國石化·중국석화) 등 3개나 된다.

중국 대기업의 이 같은 굴기(崛起)는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다. 각 업계에서 열손가락 안에 든 이후에도 매년 순위를 1, 2계단씩 뛰어오르는 것은 물론 기술력에서도 최고를 위협하거나 이미 능가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삼성전자를비롯해 17개 기업이 세계 500대 기업에 포진했지만 수량과 규모 면에서 중국에 크게 밀렸다. 바야흐로 세계가 ‘중국의 대규모 기업들의 굴기(崛起)시대’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 ‘기업굴기(企業崛起)’는 중궈멍(中國夢)의 핵심

2013년 3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전국인민대표대회(우리나라의 국회에 해당)에서 국가주석(우리나라의 대통령에 해당)으로 취임한 이후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는 ‘중궈멍(中國夢·중국의 꿈)’이다. 세계 최고, 최대의 생산력을 자랑하며 천하를 호령하던 과거의 꿈을 다시 만들어보겠다는 것이 ‘중궈멍’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시절 가장 많이 언론에 등장한 나온 ‘굴기(崛起·힘차게 떨치고 일어선다는 뜻)’란 단어와 함께 14억 중국인의 꿈과 포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행어다. 세계를 주름잡는 패권국가가 돼보겠다는 ‘대국굴기(大國崛起)’나 우주항공분야에서도 미국과 러시아를 추월하자는 ‘우주 굴기’ 등이 모두 이런 ‘중국의 꿈’과 연관된 단어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업 굴기’는 세계 시장을 석권하려는 중국인의 꿈이 담긴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유명 대기업 로고
◆ ‘세계의 기업 유치’에서 ‘중국 기업 세계’로

중국은 12.5규획(規劃·2011~2015) 기간부터 모든 분야에 걸쳐 대기업 육성을 중점 목표로 삼았다. 산업 분야별로 브랜드와 기술력을 갖춘 세계적인 대기업(그룹)을 집중적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중국기업이 외자 기업과 중국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방어적 개념을 넘어 전 세계시장을 자신들의 활동무대로 삼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바꾼 것이다.

최근 들어 중국의 산업은 경제의 고속성장에 따른 과잉투자로 인한 공급 과잉, 산업효율성 저하, 기업 부실채권 증가 등 심각한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또 세계적인 불경기로 기업들이 재무구조가 악화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중국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미래성장 동력을 찾아낼 수 있는 호기로 보고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산업전반에 걸친 적극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 국유기업의 구조 조정과 경쟁력 강화가 핵심 정책

2015년 기준 중국기업연합회와 중국기업가협회가 발표한 중국 자체의 500대 기업 중 국유기업은 293개, 민영기업은 207개였다. 국유기업은 기업수로는 500대 기업 중 58.6%에 그쳤지만 영업수입은 78.3%, 자산규모는 90.2%, 직원 수는 82.0%를차지했다. 시장경제를 지향하지만 여전히 핵심 기업들은 대부분 국유기업인 셈이다. 중국 정부가 국유기업 중심의 기업 구조조정과 기업경쟁력 강화를 핵심 정책을 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조조정은 여러 가지 형식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기업들은 도태시키고, 경쟁력 있는 기업들은 큰 기업을 중심으로 통폐합해 경쟁력 있는 대형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주 목적이다. 중국 내 철강기업 순위 2위였던 바오산 철강과 6위인 우한철강을 병합해 1위의 기업을 만드는 것도 이런 구조조정에 따른 것이다.

중국 정부는 국내외 증시에서의 기업공개, 기업합병, 일정 지분의 민영화 등을 통해 국유기업들을 정리, 통폐합하고 민영기업은 대규모 경영지원을 통해 대기업 육성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 대기업 육성 정책도 한국 모방

중국 정부의 이 같은 대기업 육성 정책은 한국정부가 70, 80년대 대기업 친화정책을 통해 세계적인 대기업을 탄생하게 했던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육성 산업이나 지역 지정, 금융 지원, 외국기업에 대한 교묘한 진입장벽을 통한시장의 보호, 세제 및 투자분야의 혜택 등이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먼저 중국의 대기업 육성 정책은 다양한 지역개발정책들과 매트릭스를 이루면서 중장기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제조업을 2025년까지 세계강국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중국제조2025(中國製造2025)전략이 그 일례다. 2015년 5월에 발표된 중국제조2025는 전통제조업의 업그레이드와 신산업분야를 모두 망라한 것으로 짧게는 2025년 길게는 2035년 완성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중국의 산업정책은 우리나라와 달리 호흡이 길다. 일반적으로 5~20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분야별 산업정책은 다른 어느 나라도 갖기 어려운 정책 추진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갖고 있다. 서방국가나 우리나라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자체가 없어지거나 흐지부지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추진되면서 성과를 하나하나 이뤄가고 있다. 또 국유기업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도 특이점이다. 규모가 큰 국유기업들이 보다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적인 기업이 되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서 구조조정과 민간자본 참여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민영화가 핵심 정책이 아니다.


‌중국의 산업별 대기업육성 방향(12.5 규획)
자료: 각 산업부문별 12.5(2011~2015)계획
‌용어 해설

13.5규획: 중국은 1953년부터 5년 단위의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 13번째 계획인 13.5규획(2016~2020)이 시행되고 있다. 11.5계획부터 중국은 정부 주도 느낌이 드는 ‘계획’이란 용어 대신 민간 주도, 정부지원 느낌의 ‘규획’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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