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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규모, 실력굴기(實力崛起)로 극복해야

곽복선(郭福墠)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입력 2016-10-23 22:10
  규모가 작은 국가나 기업이 방대한 규모의 국가나 기업과 맞서게 되면 두려움이 앞선다. 세계 2위의 경제 및 군사 대국으로 떠오른 중국과 이웃한 한국으로서는 ‘규모의 문제’는 이제 ‘발등의 불’이 됐다. 특히 남사군도(南沙群島) 분쟁이나 한반도 사드 배치와 관련한 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위압적 태도나 최근 중국어선이 한국 해경 고속단정을 고의로 침몰시킨 사건 등을 보면 중국이 이제 국제법이나 국제질서, 보편적 가치를 따르려 하기보다는 부쩍 커진 근육의 힘을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해 주변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에서 줄줄이 올라가는 마천루 빌딩들. 세계 2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아일보 DB
◆ 중국의 규모굴기(規模崛起), 주변국 압도

중국의 경제규모는 이제 다른 나라와 비교가 안 된다. 2010년 이래 경제규모는 세계 2위로 올라섰고 현재 교역규모 1위, 외환보유액 1위, 자동차 생산 1위다. 연구개발(R&D) 투자액은 세계 2위이고 500대 글로벌기업 중 98개는 중국 기업이다. 지금은 좀 하락했지만 6, 7%대의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한 곳이다. 말 그대로 ‘규모굴기(規模崛起)’를 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한국과 중국의 주요 지표를 비교해보면 이런 규모의 차이를 뚜렷하게 알 수 있다. 1992년 수교 당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500억 달러, 중국은 4908억 달러로 둘의 차이는 30%도 채 안됐다. 20여 년이 지난 2015년 중국의 경제규모는 10조8971억 달러로 한국(1조3775억 달러)의 8배에 육박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는 결코 경쟁상대가 될 수 없는 대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반한(反韓)보도를 많이 하는 중국의 모 일간지는 이제 한국을 대놓고 ‘소국(小國)’이라고 지칭한다. 대국(大國)인 중국과 동등한 상대로 대우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취지다.


소규모 병력으로 대군을 무찌른 삼국지 적벽대전을 재연한 영화 '적벽대전'의 한 장면. 규모가 크다고 해서, 병졸이 많다고 해서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대표적인 사례다. 동아일보 DB
◆ 소규모가 대규모 상대 승리 역사 많아

규모가 힘이 되지만 규모가 승패의 결정적 인자(因子)일까? 중국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소(小)가 대(大)를 이긴 적이 적지 않다. 유비(劉備)와 조조(曹操)가 활약하던 중국의 삼국시대에 유명한 3번의 전쟁이 있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2번의 전쟁은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소규모(소국)가 대규모(대국)를 참패시킨 전쟁이다. 삼국시대 최대 전쟁이었던 적벽대전(赤壁大戰)은 조조(曹操)의 대군 80만 명(실제로는 20여만 명)이 오(吳)와 촉(蜀)의 연합군 5만에게 참패했다. 동한 말엽 북부지역의 세력판도를 확정한 관도전쟁(官渡之戰) 역시 2만의 조조(曹操) 군대가 11만을 헤아리던 원소(袁紹)의 군대를 격파했다. 남북조 시대 남쪽의 동진(東晋)과 북쪽의 강자 전진(前秦)이 맞붙었던 비수전쟁(淝水之戰)은 8만의 동진이 무려 10배에 달하는 80만의 전진을 물리쳤다. 모두 소규모가 대규모를 물리친 것이다. 그 뒤 몽고가 세운 원(元)이나 만주족이 세운 청(淸) 모두 인구 수백만의 소국이 수천만의 대국을 이긴 사례다.

대국이 소국에 패하거나 멸망당한 것은 내부분열에 따른 자중지란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그 바탕에는 병법에서 금기로 여기는 교병(驕兵· 교만한 군대)의 문제가 공통적으로 깔려있다. 숫자의 크기를 지나치게 과신하는 오만함이 그 패배의 배경에 깔려있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미국이 베트남(월맹)에 패배한 월남전도 이런 게 원인이 됐다.

◆ 1인당 경제지표, 한국이 중국보다 월등히 높아

한국경제가 침체기에 있지만 여전히 단단한 내실을 갖추고 있다. 중국과 단순한 규모비교를 떠나 인구대비로 비교해보면 한국 역시 ‘소국’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중국이 한국의 27배 인구와 96배의 국토면적을 가진 ‘대국’이지만 GDP는 한국의 8배, 소비시장은 14배, 대외무역은 4배, 500대 기업은 6배 규모에 그치고 있다. 인구대비로 보면 ‘소국’인 한국이 ‘대국’인 중국에 결코 뒤지지 않으며, 오히려 더 단단한 모습이다. 다양한 자연자원, 우수한 인재들, 막대한 시장을 가진 중국에 비해 부존자원이 거의 없고 자체 시장도 크지 않은 한국이 선전하고 있다.
자료: 한국통계청, 중국통계국 통계 정리
한 국가의 미래 경제발전을 담보하는 연구개발(R&D)부문의 지출총액을 보면 한국이 선전하고 있음을 뚜렷이 알 수 있다. 중국은 한국의 4배 가까운 규모의 막대한 비용을 연구개발에 쏟아 붓고 있다. 미국에 이어 명실 공히 세계 2위의 수준이지만, 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을 보면 오히려 한국이 4.3%대 2.09%로 앞서있는 상황이다. 사실 한국은 이 부문에서 세계 상위의 수준이다. 한국경제가 중국에 비해 비록 그 규모는 작지만 여전히 건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규모 차이로 주눅들 필요 없어

중국과의 규모 차이가 자져오는 문제는 앞으로 한국이 계속 부딪힐 문제이자 필연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과제다. 중국의 거대한 시장이 가져오는 규모의 이점을 확실히 우리 것으로 하면서, 우리에게 불리한 다양한 규모의 차이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도 한국 자체의 실력 배양이 필요하다. 중국과 중국기업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가와 기업이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해답은 간단하지만 갈 길은 아득하다. 5~20년의 장기적인 계획으로 과학, 산업 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국에 비해 우리는 정책의 일관성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의 연구개발 노력들이 우리의 단단한 ‘규모’가 되도록 정책적인 뒷받침이 확실히 이루어져하며, 기업 역시 보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보며 협력과 경쟁에 걸 맞는 실력을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중국의 ‘규모굴기(規模崛起)’는 우리의 ‘실력굴기(實力崛起)’로 극복할 수 있으며, 또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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