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문일현의 북경통신

대만의 처절한 ‘탈(脫) 중국’ 시도, 곳곳서 충돌

문일현(文日鉉) 중국정법대 교수|입력 2016-10-20 00:10
올해 5월 새로 취임한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정책은 ‘탈(脫)중국’이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궁극적으로 대만의 생존을 위협하니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국민당 소속 전임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친(親) 중국’ 노선과 완전히 반대다.

정치적으론 대만-중국이 지금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현상유지’를 표명하고 있다. 경제적으론 동남아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다변화해 중국에 대한 지나친 경제의존도를 줄인다는 ‘신남향(新南向)’정책이다. 외교·안보 면에선 ‘국제적 생존 공간’을 확보하고 미국과 연합해 중국에 대항하는 ‘연미항중’(聯美抗中)이 골간이다. 
올해 5월 20일 총통 취임식에서 연설하는 차이잉원 대만 신임 총통
‘현상유지’는 말 그대로다. “중화민국(대만)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대만 인민들의 민주제도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대륙에 속한 하나의 성(省)이라고 하지만 대만은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 아니냐. 또 자유민주주의를 견지하는 대만과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중국은 다르다는 주장이다.

차이 총통은 ‘현상유지’를 위해 ‘신4불’(新四不) 방침을 제시했다. ‘현상불변’(現狀不變), ‘선의불변’(善意不變), ‘불굴복’(不會屈服), ‘불대항’(不會對抗)이다. 현상을 변경하거나 선의를 바꾸지 않을 것이고, 대항하지도 않을 거지만 굴복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요컨대 대만은 독립을 시도하지 않고, 중국은 통일을 강압하지 않으면서 기존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요구다.

중국은 펄펄 뛰고 있다. ‘현상유지’는 포장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론 ‘하나의 중국’을 부인하면서 최종적으로 대만독립을 획책하려는 기만술이라 규정하고 있다. 차이 총통이 취임 100일이 지나도록 ‘하나의 중국’을 인정조차 않는 게 그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만 시위대가 92공식 인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중국은 차이 총통이 주석에 당선된 올 1월 이후 ‘92공식’(92共識)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92공식’이란 1992년 “중국이 하나임을 인정하되 그 표기는 서로 다르게 한다(一中各表)”는 중국과 대만 사이 이뤄진 정치적 합의다. ‘중국은 하나’라는 게 핵심이다. 차이 총통은 한사코 이를 거부하고 있다.

올해 5월 총통의 취임연설은 물론 10월 10일 국경절 연설에서도 직접 언급은 회피했다. "1992년 양안 회담의 역사적 사실을 존중하며 20년 이상 양안의 교류와 협상을 통해 현재의 상황과 성과를 이뤄냈다."는 언급이 전부다. 역사적 사실을 존중한다고만 할 뿐 인정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민진당 당원 공개서한에선 "중국의 압력에 저항해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경제관계 구축을 위해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탈 중국'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양안 회담에서 시진핑 중국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총통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차이 총통이 ‘현상유지’를 고집하는 이유는 국민적 지지 때문이다. 전임 마잉주(馬英九) 총통 집권 8년간 양안은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물밀듯이 찾아왔고 자유무역협정(FTA)과 비슷한 경제협력협정(ECFA)도 체결했다. 양안은 실질적인 통일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리미아 반도를 강제로 집어 삼키면서 분위기가 돌변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중국-대만 관계는 원래 한나라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한 처지다. 대국이 소국의 영토를 먹어치워도 이를 회복시킬 방법이나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만은 목격했다. 대만 학생들이 주축이 된 시위대는 의회를 점령해 통과 직전의 중국·대만 서비스무역협정을 무산시키는 등 중국과 밀착에 강하게 반대했다.  
우크라니아 동부 전투에서 우크라이나 전투병들이 부상병을 업고 포화를 피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47%의 응답자가 '양안은 영구히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변하고 있다. 대만독립(31%), 중국과 통일(17%) 등을 압도한다. 마잉주 총통 시절 조사 때보다 8% 포인트 감소한 것이지만 ‘현상유지’ 정책이 아직까지 전반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그러나 대가는 혹독하다. 대만은 국제무대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다. 올해 4월 벨기에 브뤼셀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철강위원회에 참석 중이던 대만 무역대표단이 쫓겨났다. 대만의 지위를 문제 삼아 회의장을 떠나라는 중국의 항의 때문이다. 올 5월 유엔세계식량농업기구(FAO)와 9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총회 역시 회의장 밖에서 서성대며 귀동냥을 해야 하는 설움을 겪었다.

11월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총회 또한 큰 문제다. 차이 총통은 대만 정부의 특사로 쑹추위(宋楚瑜) 친민당 주석을 임명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과도 두 차례나 만났을 정도로 친(親)중국 성향인데다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거물급이다. 중국정부가 거부하기 힘든 인사를 내세워 APEC에서 양안 간 비공식 접촉을 갖고 나름대로 관계개선을 모색해보려는 전략적 인선(人選)이다. 그러나 중국은 퇴짜를 놓고 있다. 경제관련 인사가 아니라는 이유다. 회의가 코앞인데 진퇴양난이다. 
차이 총통이 APEC총회 대만특사로 임명된 쏭추위 친민당 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은 대신 11월2일 베이징(北京)에서 개최되는 양안포럼을 계기로 시진핑 주석과 대만 홍슈주(洪秀柱) 국민당 주석 간 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양안 정상회담 제의는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대만 야당 당수와 ‘특별한 만남’을 갖는 것이다. 대만총통의 체면을 깡그리 뭉개겠다는 심산이다. 중국은 또 대만 지방정부 중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는 8개 시·현(縣)에 한해 경제협력을 허용하고 있다. 친중 성향의 지방자치단체만을 선별해 우대하는 전형적인 분할통치(divide and rule)다.

경제 쪽은 더 참담하다. 금년 1~7월 양안 간 무역총액은 955억5000만 달러(105조4390억 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9.8% 감소했다. 중국인 관광객도 차이 총통 취임 후 22.3% 줄었다. 국경절 연휴 기간 중국인 관광객은 7915명으로 1만 명도 안 됐다. 작년 대비 19% 늘어나 25만여 명을 기록한 한국을 비롯해 중국 국경절 특수를 톡톡히 누린 일본, 태국과 너무 대조적이다. 중국인 관광객 회복대책을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을 정도다. 그나마 한국인 관광객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만에겐 가뭄의 단비다. 차이 총통의 지지율도 곤두박질 중이다. 5월 취임 당시 무려 70%를 웃돌았던 지지율은 최근 45%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한마디로 ‘탈 중국’ 시도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대만 사회 전체를 흔드는 형국이다.  
타이베이에서 열린 군중집회에 10만 인파가 양안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면초가에 몰린 차이 총통은 이 위기를 어떻게 수습할까? 그는 미국·일본 등 우호국과 동남아의 인접 국가들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대만은 올 성장 목표치 2%는 고사하고 마이너스 성장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눈앞의 위기국면을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과 신남향정책 추진으로 돌파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대만의 두 번째, 대만은 미국의 아홉 번째 교역 상대국이라는 점을 내세워 대만의 TPP 가입에 동의해달라고 미 의회를 설득 중이다. 또 단순히 투자만 늘리는 과거의 남진정책(南進政策)을 넘어 동남아 국가들과의 다원적·다층적 협력을 위해서도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유엔 재가입도 추진하고 있다. 올 9월 유엔본부에서 재가입 허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데 이어 우방인 미국·일본의 지원을 얻기 위한 로비도 적극적으로 전개 중이다.  
지난해 9월 일본을 방문한 차이 총통이 아베 일본총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대만의 처절한 몸부림에도 불구 TPP 가입이 현실적으로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우선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미국과는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개방해야 하고 미 재무부가 지정한 환율조작 의혹도 해소해야 한다. 유엔 재가입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국이 버티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신남향정책은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차이 총통이 올인하는 ‘탈중국’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인지, 그 과정에서 중국의 보복을 감당해낼 맷집은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최근 불거진 남중국해 사태다. 대만으로선 물실호기(勿失好機)다. 미·중 양국이 격하게 대립하면서 대만의 몸값이 덩달아 올랐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만이 남중국해 도서 중 두 번째로 크고 1200m 활주로까지 갖춘 타이핑다오(太平島)를 미국에 군사기지로 내줄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차이 총통이 중국의 압력에 굴복해 전임 마잉주 총통처럼 중국에 밀착할까 봐 걱정이다. 미국은 특히 최근 필리핀의 ‘오락가락 외교’를 목격하면서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져 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대만의 ‘연미항중’(聯美抗中) 전략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만이 실효지배 중인 타이핑다오에 건설된 활주로와 접안 시설
당(唐)나라 시절 측천무후(則天武后) 이래 중화권 첫 여성 최고 지도자라는 차이잉원 총통. 마오-덩-시(毛-鄧-習)로 불리며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는 평을 듣는 카리스마의 시진핑 주석. 국제사회는 중화권 두 지도자의 불꽃 튀는 대결을 지금 흥미진진하게 관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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