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어느 늦은 여름밤, 평소 알고 지내던 중국 영화제작사의 한 부사장이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대뜸 한국의 웹툰 제목을 알려주면서 이 웹툰의 작가와 협의해 영화 및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中 영화업체, 신출내기 웹툰 작가, 창의력 높이 사 거액 지불
나 역시 모르는 사람이라 알음알음 연락처를 찾아 연결시켜줬다. 지인은 웹툰 작가와 몇 번 협의하고 한국을 직접 방문하더니 작가의 웹툰 영화 및 드라마 제작 권리를 40만 위안 (당시 환율 기준, 약 6530만 원)에 사들였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웹툰을 그리던 작가의 입장에서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신출내기 작가의 웹툰이지만 시나리오의 창의력을 높이 산 것이다. 중국 영화제작사는 이후 순조롭게 영화를 촬영해 내년 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중국이 사들인 한국 웹툰 ‘위기의 범죄자’ 포스터
영화·드라마로 재가공 하기 위해 중국의 한 제작사가 판권을 사들인 국내 웹툰 '위기의 범죄자'
◆韓中 영화 합작시대는 지났다
최근 중국의 영화사들은 한국과의 합작보다는 한국인 작가의 기획이나 시나리오를 통째로 사 가는데 관심을 더 기울인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 85%, 한국 15%’가 일반적 투자 관행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기획이나 시나리오, 특수기술만 도입하고 나머지 투자자는 중국 기업이 100% 도맡아서 한다.
◆영화 투자펀드만 4조5000억…외국 투자 불필요
이런 변화는 넘치는 중국의 투자자본 때문에 가능했다. 2014년 기준으로 중국의 영화투자기금 중 파악된 펀드만 약 4조5000억 원. 연간 중국에서 출시되는 영화가 700편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편당 60억 원이 넘는다. 중국은 우리와 달리 기금의 규모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숨은 기금까지 포함하면 영화투자 금액은 훨씬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투자는 이제 매력이 없다. 투자를 받는다면 투자자 권리를 보장하고 제작과정에서 일정정도의 개입도 허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중 합작 영화 '이별 계약' 영화의 한 장면
2013년 중국에서 성공한 한중 합작 영화 '이별계약'의 성공 이후 이렇다할 한중 합작 영화가 나오질 않고 있다.
사진 CJ E&M 제공
첨부파일2. 영화·드라마로 재가공 하기 위해 중국의 한 제작사가 판권을 사들인 국내 웹툰 '위기의 범죄자' 중 일부.
◆중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창의력
중국의 영화계가 한국에게서 기대하는 건 바로 창의력이다. 중국 영화사들은 한국의 젊은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들이 내놓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아낌없이 투자한다.
중국의 영화제작자들은 중국TV 화면을 대부분 점령한 한국 드라마, 중국의 공연시장을 장악한 K-POP 스타, 그리고 중국의 온라인 만화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한국인의 창의력’을 높이 평가한다.
중국은 여전히 사고의 경직성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유교적 교육 및 가치체계와 근현대로 들어오면서 획일적인 사회주의 전체주의 교육이 가져온 폐해다. 게다가 모든 영화나 드라마가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사전심의제도도 창의력 발휘의 제약 요인이다.
◆지적재산권 보호 시작됐지만 사전검열이 장애물
창의력 발휘는 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한 사회적 장려 분위기와 실질적인 금전적 보상, 그리고 아이디어의 보호 및 구현 시스템이 시장에서 얼마나 잘 작동되느냐에 좌우된다. 최근 들어 중국은 아이디어는 잘 보호되는 편이지만 창의력에 대한 보상체계는 여전히 미흡하다. 특히 획일적인 기준에 의한 심의가 있어 젊은이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치기보다는 미리 알아서 움츠러드는 ‘자기 검열’에 익숙하다.
◆앞으로 10년은 ‘창의력 장사’ 가능
중국의 창의력 문제는 단시간 내에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 젊은이들의 창의력이 향후 최소 10년은 중국시장을 공략할 기회가 있는 셈이다. 창의력 활용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노력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물론 중국의 이런 상황이 장미 빛만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젊은이들이 최근 중국시장을 자주 두드리고 있고, 중국의 젊은이들 역시 급속한 서구화에 발맞춰 창의력이 빠르게 향상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