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유일의 중국 비즈니스 오해와 진실

사드 때문인가? 사드 핑계인가?

유일(劉一) 여의주식회사 상임고문 |입력 2016-09-05 14:09
◆정치에 휘둘리는 한-중의 문화산업

2002년 필자는 세계적 엔터테인먼트그룹인 월트디즈니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해 9월 월트 디즈니는 우리나라의 KBS와 계약을 맺어 이후 3년간 영화 및 드라마의 고정적 공급에 합의했다. 매년 약간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략 1년에 20억 원을 조금 넘는 액수였다. 계약은 홍콩에 있는 월트디즈니의 아시아법인과 KBS의 자회사인 KBS영상사업단 사이에 이루어졌다.

10월이 되자 필자는 회사(월트 디즈니)로부터 새로운 업무지시를 받아야 했다. 즉시 2년차 판매를 진행하라는 것이었다. 3년 유효의 계약이 체결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에 따라 1년차 판매가 결정된 것은 정말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2년차 판매를 진행하라는 것에 부담을 느껴 질문을 하자 이에 대해 돌아온 것은 ‘월트 디즈니의 회계년도는 10월에 시작하니까 이미 2년차에 들어선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정작 큰 문제는 다음에 벌어졌다. KBS측에서는 2002년 12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의 이유를 대면서 2년차 구매를 그 다음해 4월이나 5월경으로 미루자고 한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12월에 있고, 다음해 2월에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당연히 KBS 본사의 사장이 바뀔 것이고, 이에 따라 3월경에 자회사의 사장들도 다 바뀔 것이니 큰 액수의 거래는 신임사장이 결재해야 한다는 지극히 한국적인 논리였다. 그리고 이 말에 대해서 월트 디즈니의 임원진들은 ‘대통령선거와 영화 판매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해댔다.

다른 회사와의 거래에서도 자신의 회계년도 관행을 내세워서 단기간의 실적을 올려야 하는 회사 임원진의 입장과, 정치에 영향 받는 우리나라 방송업계의 현실 사이에서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국 예능스타의 동남아 입국 장면
◆사드 때문에 올 스톱?

최근 사드 (THAAD) 배치 문제로 온 나라가 갈등을 겪고 있고 이 때문에 중국에서의 한류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 배우들의 중국 영화나 드라마 출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감독이나 배우들의 비자발급이 지연되고 있으며, 이미 촬영을 모두 끝낸 드라마의 방송일정도 연기되었다는 뉴스가 매일 신문 지상을 장식하고 있다. 어떤 네티즌은 ‘이제 한류는 끝났다’라고까지 말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감정만으로 접근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해석할 때 우리에게 더 큰 기회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먼저, 현상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출연이 취소되었다는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완전한 형태의 계약이 체결되어 심의신청까지 마친 상황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구두약속이나 MOU 수준의 합의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의 공식통계를 보면 1년에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영화공동제작의 건수는 5편을 넘기기 힘든 형편이지만 각종 매체에 뿌리는 보도자료만 보면 연간 수십 편이 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홍보에 힘을 써야 하는 국내 영화사나 드라마제작사의 입장도 있겠지만 문제가 되었다면 그 내용을 객관적으로 알아봐야 하는 것이다.

중국 광저우 한국 아이돌그룹 공연장 모습
‌◆중국 내 한류(韓流) 점검 계기로

다음으로 문제의 본질적 내용을 알아봐야 한다. 사드 때문에 한국 연예산업의 중국진출에 심각한 영향을 입고 있고, 심지어는 이제 한류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의 대기업인 텅쉰(騰訊)이 우리나라의 YG에 거액을 투자하는 등 중국회사의 한국투자 열기지속이나 한국 연예인이 지금도 중국TV 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못한다.

이전에 한국 연예인들이 중국에 관광비자로 입국하여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을 벌어서 세금도 내지 않고 불법으로 돈을 국내로 송금한 사실이 흔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사드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런 문제를 이제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업계도 그간의 잘못된 관행을 벗어나 이제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위한 점검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이것이 어차피 출구전략이 세워져 있는 정치게임이라는 것이다. 국방부의 사드배치 발표가 있고 나서 중국 정부는 불과 50분 후에 이를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을 보면 중국은 이미 이 모든 일들이 가는 방향도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대책도 수립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대책에는 출구전략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사드 때문’이 아니라 ‘사드 핑계’

이런 정치게임의 첫 번째 희생양으로 엔터테인먼트업계가 지목된 것이며 이는 중국 정부의 원칙적인 법집행이라는, 우리가 항의할 수도 없는 형태의 압력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엔터테인먼트회사들은 이런 분위기에 스스로 올라타서 합의를 뒤집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이런 정치적인 분위기를 핑계로 말을 바꾸거나 계약조건을 변경하고자 하는 시도 또한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겨울연가로 시작해서 일본을 뒤덮던 한류바람이 어느 순간부터 사그라들었던 일을 불과 2, 3년 전에 겪었다. 그리고 그것은 불황타개와 군사대국화를 위한 희생양 지목의 과정에서 광범위한 여론조작 등을 통해서 이루어진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한류는 이제 과열을 벗어나 차분하게, 하지만 더 안정적인 산업구조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중국시장이라는, 일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시장을 개척했고 이에 따라 한류는 또 한번의 엄청난 기회를 맞이했던 것이다.

사실 그동안 중국정부가 한류영화나 드라마에 대해서 무언의 압력을 통해 어느 정도의 조정을 거친 일은 처음이 아니다. 이런 어려움은 앞으로도 분명히 계속될 것이며 감정적으로 이 상황을 대하기보다는 차제에 우리의 한류산업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고, 2, 3 개월 내로 다시 돌아올 새로운 기회를 대비하는 편이 훨씬 슬기로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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