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폐수처리 분야에 특허를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을 만났다. 호수녹조와 공장폐수를 처리하는 그 회사의 기술내용을 설명해주는데 기존의 처리방식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동안 중국 환경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기업 관계자와 많이 만나봤던 필자로서는 호수가 많은 중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무척 구미가 당기는 기술이었다. 그 기업의 말로는 중국의 꽤 큰 기업에서 이 기업의 기술을 어떻게 알았는지 벌써 수십억 원을 투자할 테니 중국에 공장을 차리고 시장을 공략하자는 제의가 있었다고 한다.
◆“다 좋은 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기술도 좋고 전망도 좋아 보이는데 왜 망설이냐고 물었다. 그는 “중국에서 합자하면 기술만 뺏기고 말 것 같다”며 “중국시장이 워낙 크고 환경 특히 오폐수처리 분야에 기회가 많은 것은 알겠는데, 우리 회사가 중국기업에 비해서 너무 작아 겁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 비교적 규모가 큰, 아는 한국기업 있으면 소개해달라”며 “그 기업과 같이 중국시장에 진출하거나, 그 기업이 원한다면 기술을 다 넘겨주고 관련 원료를 공급하는 방식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색깔만 달라요.”
한국의 MP3플레이어 `엠피오`(왼쪽)와 중국산 유사품(오른쪽). 색깔과 상표명만 다를 뿐 제품을 아예 통째로 베꼈다.
◆속이고, 모방하고…심지어 거꾸로 상표권 도용 소송까지
중국기업과 사업을 하려는 우리 중소기업들이 부딪히는 가장 일반적인 문제 중 하나는 상대기업을 믿을 수 있느냐다. 1980년대 말 우리기업이 처음으로 중국에 진출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끝없이 겪는 문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중국기업이 우리의 상표를 도용하거나 심지어는 우리제품을 수탁, 생산하는 중국 업체가 우리 상표를 자기가 등록하고 거꾸로 우리기업이 상표를 도용했다고 고발하거나 어렵게 상담을 통해 중국 바이어에게 수출을 하고 났더니 그 뒤에 후속 구매가 없기에 어찌된 일인가 알아보면 어느새 모방품을 만들어 팔고 있는 일은 흔하다. 합자회사를 만들고 생산에 들어갔더니 바로 기술을 빼내 친척을 통해 똑같은 제품을 옆 공장에서 버젓이 만들어 파는 일도 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믿음을 깨는 일들이 수많이 벌어지면서 우리기업의 중국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대단히 낮은 상황이다. 이러한 신뢰도 부족이 기술경쟁력을 갖춘 우리 중소기업이 중국기업과의 협력을 꺼리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다.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의 독자투자 비중이 73.7%로 다른 나라 평균보다 8.9%p나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만큼 우리기업이 중국기업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짝퉁 단속은 퍼포먼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당국은 대대적인 '짝퉁' 단속을 벌였다. 하지만 짝퉁 상품은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공식 제공하는 데이터 활용을”
기업들과 만나 상담을 하다보면 수입상 물색, 유통망 진입, 진출지역 선정, 대리상 선정, 현지 마케팅 전략, 적정투자규모 결정 및 인력 수급, 회계와 세무 문제 등 다양한 주제가 오가지만 결국 마지막에 걸리는 것은 중국기업에 대한 신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중국기업을 제대로 알 수 있겠느냐? 중국기업의 규모에 비해 우리기업 규모가 현격히 작은데 바로 잡혀 먹히지 않겠느냐? 기술을 뺏기지 않을 방법이 있는가? 중국기업을 믿을 수 있겠는가? 등등 기업의 질문은 신뢰도에 집중되고 있다. 중국기업에 대한 믿을만한 자료가 있다면 이런 불안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상행정관리총국, 기업 기본 자료 인터넷에 공개
다행스럽게도 우리기업에게 반가운 소식도 있다. 중국정부는 사회와 기업의 낮은 신뢰도 문제가 국가 전체 경쟁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2020년까지 사회신용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행정, 기업신용관리 등 비즈니스 분야, 지적재산권 등 사회시스템 등 국가전반에 걸쳐 신용시스템 구축 및 신뢰도를 제고하려는 계획을 공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기업설립과 등록사항을 관리하는 공상행정관리총국에서 중국기업의 기초적인 사항을 인터넷으로 알 수 있는 신용시스템을 이미 2년 째 운영하고 있다. 중국기업들이 의무적으로 기업의 명칭, 대표자명, 등기자본금, 설립년도, 업무영역 등 기본 자료를 공상행정관리국 인터넷망에 게재하는 방식이어서 신뢰도에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기업이 중국기업의 기초적인 내용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신용사회구축이 2020년까지 어느 정도 정착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전보다는 투명한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기업으로서는 중국기업과 협력에 앞서 기본적으로 중국기업 자료를 검색한 후에 이를 바탕으로 그 기업과 접촉하는 것이 그나마 '신뢰 불안' 문제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