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열린 디지털사이니지 전시회
◆ 몇 번 만나고 덜컥 합작 투자
옥외광고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지닌 K사의 P사장, 그는 2013년 중국의 디지털사이니지 시장 진출을 추진했다. 디지털사이니지란 디지털 정보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옥외광고로 관제센터에서 통신망을 통해 광고 내용을 제어할 수 있는 광고판을 말한다. 미래엔 지나가는 행인의 홍채를 인식해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그에게 딱 맞는 맞춤형 광고를 내보내는 스마트 광고가 현재의 옥외 광고를 대체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K 사장은 파트너를 물색하던 중 지인을 통해 상하이(上海)에서 온 K 사장을 알게 됐다. K사장은 20대 후반에 중국으로 건너가 20년 이상 성공적으로 무역업을 하는 사람으로 소개받았다. 최근 중국에서 이는 대형쇼핑몰 건설 열기에 발맞춰 내부시공일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K 사장의 초청으로 상하이를 방문한 P사장은 K 사장이 소개한 대형건설공사 현장을 여러 곳 직접 방문하고 관계자들과 의견을 나눈 다음 향후 사업진행을 위해 K 사장과 50:50으로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K 사장은 “회사설립이 마무리됐다”며 영업집조 (사업자등록증과 유사)를 팩스로 보내오기도 했다. 자본금의 액수도 명확히 기재되어 있었기에 전혀 문제가 발생하리라고 예상하거나 K 사장을 의심하지 않았다.
디지털사이니지 기법으로 천장을 꾸민 중국의 한 백화점
◆추가 투자 계속 요구하더니 어느 날부터 연락 ‘뚝’
문제가 생긴 것은 이로부터 6개월이 지난 후였다. 말만 무성했지 일에 진척이 없자 P 사장은 K 사장을 닦달했다. K 사장은 처음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계속 추가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는 전화를 받지 않고 연락이 되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P 사장은 회사직원을 상하이에 보냈다. 며칠 뒤 직원이 보고한 내용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K 사장은 원래부터 기업을 경영하고 있지도 않았고, 합작법인이라고 만들었다는 회사도 서류만 갖춘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회사 이름으로 이곳저곳에서 이미 돈을 끌어다 써서 채권자들이 합작파트너인 P 사장을 찾아서 따지려 한다는 얘기였다.
◆ 페이퍼컴퍼니 속는 한국인 투자자 수두룩
중국에서 페이퍼컴퍼니는 보통 피바오(皮包)회사라고 부른다. 단어의 뜻만 보면 ‘봉투회사’ 라는 것인데 이런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허가를 받기 어렵지만 담당 공무원과의 결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영업집조 상의 자본금 액수마저 위조하기도 하는데, 중국에서 이런 가짜 영업집조는 불과 얼마의 돈만 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공무원과 결탁한 경우에는 세무총국에 가서 조회해도 진짜인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는 국영기업인 것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중국에서 이런 유령업체에 속아 넘어가 거액의 투자자금을 날리는 기업가가 수두룩하다. 특히 소기업일수록 이런 피해가 많다.
중국 바이두에 들어가 주소를 치면 해당 주소의 위치가 지도에 정확하게 나온다.
바이두를 통해 찾은 주소지에 대한 위성영상 3D 지도 서비스
◆ 페이퍼컴퍼니 사기 안 당하려면-4가지 체크 포인트
페이퍼컴퍼니가 가진 위험성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몇 가지의 방법은 유효하다. 먼저 영업집조 상에 나타난 자본금의 규모를 봐야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영업집조마저 위조해 버린 사기를 당했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꽤 유용한 방법이다. 중국은 회사를 설립하면서 하고자 하는 업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본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너무 적은 자본금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에는 그 진정성을 의심해야 한다.
다음으로 회사주소에 대한 검색이 필요하다. 이 방법은 직접 찾아가보지 않아도 어렵지 않다. 회사주소를 바이두(百度)와 같은 검색엔진에서 찾아보면 지도가 나오고, 그 지도의 거리 뷰 기능을 이용하여 회사가 위치해 있다는 곳이 과연 자신들이 생각하는 영업범위나 규모와 합치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또 자본금이나 회사의 지출능력은 한계가 있는데 막상 사무실은 엄청나게 비싼 임대료가 필요한 시내 중심가에 있다면 이 또한 의심해야 한다.
종업원 또한 중요한 검증대상이다. 말로는 회사를 차렸다고 하지만 막상 전화해 보면 종업원이 없거나 있더라도 늘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휴대전화로 전화를 받고, 가끔 말하는 도중에 회사이름을 실수하는 등은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페이퍼컴퍼니가 자신의 사업규모와는 무관하게 거창한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 별 것 아닌 회사를 차리면서 무슨 글로벌이니, 무슨 센터니 하는 등 이름이 몸에 맞지 않는다면 의심을 해봐야 한다.
◆ 과도한 욕심이 화근 많아…중국은 ‘투자의 엘도라도’ 아니다.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는 것이다. 과연 내 자신이 이런 사업을 벌여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나아가 지금 벌이고 있는 사업이 과연 사업 타당성이 있는지 등 자신의 경영능력과 합리적 투자 여부를 검증해봐야 한다. 중국은 ‘투자의 엘도라도’가 아니며 과도한 욕심이나 허영심은 화를 낳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