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아온 유커들 동아일보 DB
사드의 후폭풍을 맞은 설날 아침(元旦)
설 명절 연휴다. 음력 새해 아침인 우리의 설 명절은 중국의 최대 명절 춘제(春節)연휴와 겹쳐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국을 찾아오는 유커(遊客)들이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금년에는 사드 후폭풍으로 유커가 끊긴 화장품점이나 관광지의 한산한 모습이 보도되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더욱 노골화되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의 중국 공연마저 취소되었다. 중국이 2년 전 스스로 초청한 베이징 상하이 등 순회공연이 느닷없이 취소되자 한중간의 사드 갈등이 갈 때까지 가는 것이 아닌지 아연할 따름이다. 이러한 가운데도 우리의 전통 명절 설날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설은 그 해 최초의 태양이 뜨는 ‘첫 아침’ 즉 원단(元旦)을 말한다. 단(旦)의 글자를 보면 지평선에서 태양이 오르는 모습이다. 설날을 정월 초하루라고도 한다. 중국은 하(夏) 은(殷) 주(周) 시대부터 새해 첫 달을 정월(正月)이라고 불렀다. 그 후 천하를 통일한 진(秦)나라에서만 정월을 부르지 못하고 단월(端月)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진시황의 이름 정(政)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설 명절, 춘제(春節) 그리고 테트(節)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사회는 농사와 관계되는 달(月)의 주기에 의해 결정되는 음력(陰曆)을 사용하였다.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음력이 좀 더 과학적인 양력(太陽曆)으로 바뀌어 새해 첫날인 설도 양력에 양보해야 했다. 과거의 설은 구정(舊正)이 되었다.
중국을 위시하여 화교권인 타이완 홍콩 그리고 민속을 중시하는 한국 베트남 등은 음력설을 쇤다. 베트남에서는 설을 테트(節)라고 부른다. 베트남이 통일되기 전에 베트콩(민족해방전선)이 남베트남의 주요시설을 점령한 ‘테트 공세(구정 공세)’는 설 연휴 기간의 대공세였다.
새롭고 낯설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전통 ‘설’은 과거에는 구정으로 불렀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에도 줄곧 양력설(新正)을 쇠다가 민주화와 함께 국민들의 민속 전통명절이 중시되어 다시 음력설을 쇠고 있다.
중국은 신해혁명으로 양력을 공식화하고 1913년부터 새해 첫날 원단을 양력에 따르고 과거의 음력 원단은 시기가 입춘과 비슷하다고 하여 춘제(春節)로 고쳐 불렀다. 지난 2013년은 중국으로서는 춘제 제정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중국에서는 춘제를 맞아 고향방문을 하는 민족 대이동을 춘운(春運)이라고 부르고 있다.
복(福)을 받으려면 복자를 거꾸로 붙여라
우리의 설 명절을 맞이하면서 필자가 홍콩과 중국에서 지낸 춘제가 생각난다. 춘제가 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것이 ‘꽁시파차이(恭喜發財)’다. 문자 그대로 ‘돈 버는 것을 축하 한다’는 뜻이다. 당시에는 역시 ‘비단장사 왕 서방‘의 나라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새해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춘제에는 새해 다복하기를 바라는 의미의 ‘신니엔 콰이러(新年快樂)’라는 인사를 하면서 세배(拜年)도 빠지지 않는다. 세배를 받는 손위 사람은 세뱃돈(야수이첸 壓歲錢)을 주게 되는데 그냥 주는 것이 아니고 붉은 봉투(紅包袋)를 준비하여 그 속에 정성들여 넣어 주어야 한다. 붉은 색은 축하의 의미와 함께 악귀를 쫓아낸다는 미신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맘때 시골에 가면 집안에 복(福)자를 붙인 것을 가끔 보게 된다. 중국에는 그 복자가 대부분 거꾸로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특히 시골의 대문짝에 붙어 있는 상하(上下)가 바뀐 복자를 보고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잘못 붙였거나 누군가가 장난으로 글자를 돌려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뒤집혀 걸린 복을 중국어로 ‘다오푸(倒福)’라고 한다. 뒤집힌다는 다오(倒)는 도착을 의미하는 다오(到)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다오푸(倒福)’는 ‘다오푸(到福)’가 된다. 복이란 글자가 뒤집혀야 복이 나에게 실제로 도착한다는 현실적 의미로 바뀐다.
‘설날에 젓가락을 떨어뜨리면 운수 대통’
중국에는 긍정의 발상이 강하여 나쁜 말도 같은 발음의 좋은 뜻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동음연상(同音聯想) 습관이 있다. 중국 사람들이 숫자 8을 좋아하는 것도 8의 발음이 돈은 번다 발재(發財)의 발(發)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에 개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새해에 젓가락을 떨어뜨리면 운수대통이라는 말이 있다. 언젠가 베이징에서 지인 부부와 신년에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는데 식사를 하다가 잘못하여 손에 쥔 젓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당황하여 복무원을 부르려고 하고 있는데 지인 부부는 ‘신니엔 콰이러’(新年筷落)하고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하였다.
지인의 설명에 의하면 새해에 젓가락(筷子)을 떨어뜨린다(落)는 ‘신니엔 콰이러(新年筷落)’는 새해 다복하기를 바란다는 ‘신니엔 콰이러(新年快樂)’와 발음이 같다. 따라서 새해에 젓가락을 떨어뜨린 것으로 한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운수 대통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축하해 준 것이라고 한다.
금지된 바오주(爆竹)
중국의 춘제 분위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바오주(爆竹)’라하여 화약으로 연결된 불꽃놀이다. 이맘때면 온 마을 이 바오주 터지는 소리에 잠을 못 이룬다. 바오주는 바오주(報祝)와 같은 발음으로 축복을 가져온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옛날 대나무를 태울 때 나는 소리로 악귀를 쫓아냈다는 풍습에서 유래한다.
최근에는 바오주가 터질 때 나오는 연기가 미세먼지가 되어 도시의 스모그를 악화시키고 화재의 우려도 있다고 하여 베이징을 위시하여 대도시에는 바오주 금지령이 내려져 있다. 실제로 2009년 중국 중앙텔레비전(中國中央電視臺 CCTV) 신축 본사건물의 화재는 바오주의 불꽃이 건축자재에 옮아 붙어 발생된 것이었다.
정유년 닭의 해는 한중 양국의 길상의 해
새해 음식으로 자오즈(餃子)라는 만두를 빚어먹는 습관이 있다. 자오즈의 모습이 반달 모양으로 옛 중국의 돈의 모습이라 하여 돈을 많이 벌라는 의미도 있다고 하지만 새해가 지난해와 교차한다는 의미의 자오즈(交子)와도 발음이 같아 자오즈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자오즈와 함께 닭고기(鷄)와 생선(魚)이 빠지지 않는다. 닭고기의 계(鷄)는 길상(吉祥)의 길(吉)과, 생선의 어(魚)는 여유로움의 여(餘)와 발음이 같아 두 음식을 먹음으로서 한 해 좋은 일과 풍요로움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중국과 사드 문제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미국을 겨냥하여 한국에 소리 지르는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 보였는데 최근에는 살계경후(殺鷄儆猴 닭을 죽여 원숭이를 훈계한다)의 저의가 있다고 본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등장으로 동아시아의 지정학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아 미국과 주변국을 훈계한다는 것이다.
금년은 붉은 닭의 해이다. 중국은 고유의 긍정적 연상(聯想) 마인드를 살려 수교이후 25년간 한중 양국이 협력하여 이루어 낸 수많은 성공사례를 기억해야 한다. 한중 공통의 전통명절 설과 춘제가 사드의 후폭풍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을 살계의 닭으로 여기지 말고 길상의 닭으로 연상되어 금년 한해 한중 양국 국민의 길상의 한 해가 되도록 특단의 외교노력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