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박재우의 한시고금

동심초, 설도, 그리고 탁문군

박재우(朴宰雨) 한국외대 중국언어문화학부 교수 |입력 2016-10-03 07:10
‘마음을 함께 한 님과는 맺어지지 못한 채, 하릴없이 풀매듭만 짓고 있네요(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설도(薛濤)의 『봄날의 소망(春望詞)』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부르는 가곡 중 ‘동심초(同心草)’라는 노래가 있다. 모두 알다시피 가사는 다음과 같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 안서 김억의 동심초 가사, 1200년 전 중국 설도 작품

그동안 믿고 마음을 주고받은 임과 일이 잘 안 풀릴 때 혼자만 애타하면서 그 마음을 주변의 소소한 사물에 의탁하여 푸는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가곡은 당나라 때 지금의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에 살던 여류시인 설도(薛濤)가 지은 5언 절구 『봄날의 소망(春望詞)』 제3수를 현대시인인 안서(岸曙) 김억(金億)이 번역하고 김성태가 작곡한 노래다. 우선 시 4수 전체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봄날의 소망(春望詞)

花開不同賞, 꽃이 피어도 같이 즐길 이 없고
花落不同悲.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이 없네.
欲問相思處, 묻고 싶어라. 그리운 님 계신 곳
花開花落時. 꽃 피고 꽃 지는 시절에.

攬草結同心, 풀 뜯어 마음을 하나로 묶는 매듭을 지어
將以遺知音. 임에게 보내려 마음먹다가
春愁正斷絶, 사무친 그리움 잦아들 때에
春鳥復哀吟. 봄새들이 다시 구슬피 우네.

風花日將老, 꽃잎은 바람에 나날이 시들어 가고
佳期猶渺渺. 만날 기약 아직 아득하기만 한데
不結同心人, 마음을 함께 한 님과는 맺어지지 못한 채
空結同心草. 공연히 풀매듭만 짓고 있네요.

那堪花滿枝, 어찌하나, 가지가지 피어난 저 꽃
翻作兩相思. 괴로워라, 서로 서로 그리움 되어
玉箸垂朝鏡, 아침 거울에 눈물이 떨어지는데
春風知不知. 봄바람은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석]
‌ ▶欲問, 묻고자 하다, 알고 싶다.
▶相思, 그리워하다. 그리운 님, 相思處는 그리운 님이 계신 곳.
▶攬, 잡아매다, 손에 쥐다.
▶將以, 장차 그로써.
▶遺, 주다, 보내다.
▶春愁, 봄의 근심, 이성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佳期, 좋은 기약, 만날 날.
▶結同心人, 마음을 함께한 님과 맺어지다.
▶堪, 할 만하다. 견디다, 감당하다.
▶玉箸, 옥으로 만든 젓가락처럼 흘러내리는 눈물, 눈물.
청두(成都) 왕장러우(望江樓) 공원에 있는 설도 좌상(坐像)
이 시를 지은 설도(768-832)는 자가 홍도(洪度)로 본래 지금의 시안(西安)에 해당하는 장안(長安) 사람이다. 아버지 설운(薛鄖)은 조정의 관료로 있었는데 학식이 연박(淵博·넓고 깊음)하여 어렸을 때부터 설도에게 글을 읽히고 시문을 짓게 하였다. 설도의 미래 운명과 관련하여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즉 부녀가 집 정원에 앉아 오동나무를 바라보고 있다가 아버지가 먼저 한 구 읊었다.
‘마당에 있는 오랜 오동나무 한 그루, 줄기가 구름 속까지 치솟았구나(庭除一古桐, 聳干入雲中).’
그러자 설도가 대구를 달았는데 이러하였다.
‘가지는 남과 북에서 오는 새를 맞고, 잎은 오가는 바람을 보내는구나(枝迎南北鳥, 葉送往來風).’
부친은 이 대구를 듣고 그 재주를 기뻐하면서도 이 시구가 딸의 ‘동서남북으로 오가는 손님들을 맞고 보내는’ 운명이 예견되는 것 같아서 걱정을 했다고 한다.

◆부친 폄적 뒤 별세…악기(樂妓)의 운명으로

얼마 후 부친이 권력자의 비위를 거슬러 쓰촨 청두로 폄적(貶謫·벼슬을 떨어뜨리고 귀양 보냄)하게 되자 온 가족이 함께 이사를 왔는데 또 몇 년 되지 않아 설도 나이 14세에 아버지가 풍토병에 걸려 죽게 된다. 16세 되던 해 모친을 봉양하고 가사를 꾸리기 위해 음률을 잘 이해하고 언사(言辭)를 지혜롭게 풀며, 시부(詩賦)에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예견된 운명처럼 설도는 결국 악기(樂妓: 노래를 부르는 고급 기생, 수청은 들지 않아도 되었다고 한다)로 적(籍)을 올리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의 뛰어난 시적 재능은 785년 사천절도사로 온 위고(韋臯)의 눈에 들어 공문을 작성하고 장서를 관장하는 교서(校書)라는 벼슬자리를 추천받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많은 중시를 받게 된다. 설도는 평생 위고 이래 총 11명의 절도사로부터 불려 다니며 많은 시문을 짓게 된다. 설도는 곧 시단에 널리 이름이 나 백거이(白居易.772-846), 원진(元稹.779-831), 두목(杜牧.803-852) 등 당시 명망 있던 시인들과 많은 시적 교류를 했다. 현재도 원진 및 백거이와 주고받은 많은 창화시(唱和詩)가 남아 있다. 설도는 느낀 바 있어 나중에 돈을 내고 악기의 적에서 탈퇴하여 자유롭게 살게 된다.

◆ 백거이 원진 두목 등 당대 최고 시인들과 교류

설도 41세 때 시작된 10세 이상 아래인 원진과의 늦사랑이 천고에 전해지고 있다. 원진은 설도와 많은 연정의 시를 주고받는데, 그녀를 한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짝을 이룬 탁문군(卓文君)과 같이 거론하기도 했다.
(좌) 원진이 설도에게 써준 연애 시와 설도가 시를 쓰고 있는 모습. (우) 설도가 설도전(薛濤箋·시를 적는 붉은색 종이)을 만드는 모습.
◆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별난 사랑

만년에 설도는 청두 서쪽 완화계(浣花溪) 시냇가에 살며 음시루(吟詩樓)를 짓고 시를 읊으며 지냈다. 당시 쓰촨 지방에는 종이문화가 발전하였는데, 설도는 시를 운치 있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소나무 꽃무늬를 새겨 넣은 붉고 고운 색종이를 직접 제작하여 시인들과 시를 주고받으니 그것이 당시 유명해져 ‘설도전(薛濤箋)’으로 불리웠다. 원진은 쓰촨으로 발령이 났을 때, 한때 설도와 깊은 정을 나누었지만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자 떠나가고 만다. 원진의 여성 편력과 풍류 끼에 대해 소문을 듣지만, 설도는 일편단심 원진을 기다리니 헤어진 지 10년이 지나서도 원진을 사모하는 시를 남길 정도였다. 결국 맺지 못할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만년에는 대나무밭 속에서 검은 색 여도사복을 입고 수도하는 자세로 살다가 세상을 뜬다.

◆ 여성의 셈세한 설도전(薛濤箋)으로 유명

위에서 소개한 『봄날의 소망』 시는 바로 이 원진을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사무친 그리움에 대한 시적 표현은 오늘날에도 『동심초』를 통해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500여 수를 썼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남아 있는 시는 90수 정도다.

◆ 500여 수 지었지만 현재 전해지는 건 90수

설도를 말하자면 현재 청두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명한 페미니스트 여성 시인 자이융밍(翟永明)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청두의 콴자이샹쯔(寬窄巷子: 넓고 좁은 골목이라는 뜻, 서울의 인사동과 유사한 분위기)에서 ‘바이예(白夜)’라는 술집을 운영하는 여성시인이다. 그는 술집을 시 낭송 등 국내외 시가(詩歌) 및 문화 교류의 장으로 활용한다. 자이융밍은 오늘날 중국에서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유명한 시인이다. 젊은 시절엔 미모로도 뛰어났다. 바이예는 중국의 내로라하는 시인, 문인들이 청두에 가게 되면 꼭 들르는 곳이다. 이 곳에 가면 한때 ‘중국의 솔제니친’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현재는 부분적으로 해금되어 신병치료차 대륙을 드나들고 있는 당대 최고의 시인 베이다오(北島·67·본명 자오전카이·趙振開) 홍콩 중문대 명예교수, 중국의 유명한 현대시인 어우양장허(歐陽江河), 몇 년 전에 타계한 홍콩 저명 시인 교수 량빙쥔(梁秉鈞), 중국의 대표적인 제6세대 영화감독 자장커(賈樟柯) 등이 다녀갔거나 공동 활동을 한 흔적이 보인다. 필자도 과거 청두를 가는 기회에 중국문학을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자이융밍을 만나 술을 얻어 마시면서 중국 고금의 시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 쓰촨 사람인데다가 시가의 수준이나 미모, 술, 당대 저명 시인이나 명사들과의 교류 등을 보자면 바로 현대의 설도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4년 4월 한중시가(詩歌)낭송회와 중화명작가 초청 문학포럼을 위해 한국외대를 찾은 자이융밍 시인(오른쪽 3번째)과, 한국시인 한세정(맨 왼쪽), 박미산(왼쪽 3번째), 진은영(맨 오른쪽), 최동호(오른쪽 2번째), 그리고 필자(왼쪽 2번째)

◆ ‘현대의 설도’ 자이융밍

자이 시인은 자신의 운명을 그녀와 빗대며 중국의 전통적인 남성중심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설도를 옹호하는 『떨어지는 나뭇잎은 오가는 바람을 보내고』라는 글을 쓴 바 있다. 자이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운명적으로 고통을 당한 선배 시인 설도에 대해 같은 여성으로 그리고 같은 쓰촨 사람으로서 깊은 동류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자이는 설도에 대해 다른 여성과는 달리 음악 담당 기녀와 교서의 경력을 갖고 있고, 남성들만이 참가하는 서천(西川) 막부의 정책 논의에 참여하였으며, 뛰어난 재능으로 당대 저명시인 및 명사들과 많은 시적인 교류를 하면서 실지로 뛰어난 시적 성취를 이루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나아가 설도전을 만들어 글 쓰는 종이 문화의 발전에 기여했고, 그리고 스스로의 자유롭지만 단호한 애정 선택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그녀는 남성중심 사회의 도덕적 편견에 의해 악기(樂妓) 경력이 있는 설도 같은 여성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아울러 『주변루(籌邊樓)』 시의 ‘구름과 새들이 눈높이로 보여서 창문을 여니 사면팔방의 가을 경치가 일망무제 펼쳐지고, 검남 서천(劍南西川) 중심에 우뚝 서서 사십 주 전 지방을 제압하는구나’라는 구절 등을 인용해 가며, 이들 시에서 보이는 남다른 시야와 식견, 기백과 패기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설도와 자이융밍의 시는 고대시와 현대시라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시의 의식과 기법이라는 면에서는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강렬하게 운명적인 공감대를 느끼고 동류의식을 느끼며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자이융밍이 이미 설도의 자아를 자신 속에 수용하고 그 여성으로서의 운명 개척과 뛰어난 문학적 정신을 계승하려는 의지로 보기에 충분할 것이다.
지난해 4월 필자는 청두 쓰촨대학 초청을 받아 특강을 하러 갔다가 한류문화에 열광하고 있는 쓰촨 지방 젊은이들과 소통을 할 만한 인문적 소재가 없을까 고심하다가 위의 설도의 시와 우리나라 노래 동심초를 소개하면서 아울러 우리나라 시인 황진이(黃眞伊), 그리고 현대 쓰촨의 자이융밍 시인을 비교해 가며 강연을 한 바 있다.

◆ 문화교류 쌍방향일 때 더욱 공고


현재 한중 간에는 많은 문화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TV연속극 등 유행문화 중심인 한류가 전 중국, 나아가 전 중화권에서 널리 수용되고 유행되는 데에서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문화교류는 쌍방향으로 흐를 때 오랜 지속성을 갖게 된다. 이제 한중 간의 장기적인 인문교류를 위해서도 오늘날 우리 문화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고대 중국의 특정 문화나 새로운 특색을 갖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수준 있는 현대 중국문화에 대해서도 이해를 심화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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