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박재우의 한시고금

“이웃 간 분노 의심, 제때 없애야”

박재우(朴宰雨) 한국외대 중국언어문화학부 교수 |입력 2016-09-05 10:09

‌◆한중은 일의대수(一衣帶水)...제때 화합해야

“분쟁은 그대의 자유로운 생각을 막히게 하리니 제때 이웃과 서로 웃음으로 화합하세나.” (“訟端可窒君試思, 歲時隣里相諧嬉”)
-육유의 『이웃을 일깨우며(諭隣人)』

올해 8월 24일로 한중 간에 수교한지 24년이 되었다. 수천여 년의 오랜 이웃이 1948년 남북분단과 함께 44년간 교류가 단절되었다가 이웃의 관계를 회복한지 24년이 지난 셈이다.

중국에는 이웃을 매우 중시하는 전통이 있다. 그러기에 “먼 친척이 가까운 이웃만 같지 못하다” “나무가 없으면 천막을 지탱할 수 없고, 이웃이 없으면 좋은 나날을 보낼 수가 없다” “이웃집에 불이 났는데 같이 끄지 않으면 스스로가 위험해진다”는 등의 속담도 많다.

그들은 이웃 나라에 대해서도 가깝다는 의미에서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옷 띠처럼 얇은 강을 하나 사이에 둔 가까운 관계라는 의미로 특히 우리 한반도와의 선린적 관계를 논할 때 이 말은 어김없이등장한다. 그러기에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2014년 서울대학교의 강연에서 중국과 한국 간의 상부상조하여 왔던 역사적인 이웃관계와 현실적으로 상호의존적인 우호적인 이웃관계를 한껏 강조하지 않았던가.

한중 이웃 간 우호를 강조한 시진핑 주석의 서울대 강연 사진

‌◆서로 속마음을 봐야

그는 당시의 한국 방문에 대해 “친구를 보려고 이웃집에 마을 온 것(串串门, 看看朋友)“이라고 하였다. “좋은 이웃은 금을 주고도 바꾸지 않는다(好隣居金不換)”라는 속담을 인용하기도 하고 “이웃은 서로 잘되기를 바라고, 친척은 서로 잘 되기를 바란다(鄰望鄰好, 親望親好)”라는 중국 속담을 인용하기도 했다. 또 조선시대의 시인 허균(許筠)이 쓴 “깊은 속마음을 매번 서로 내보이니 얼음 담는 옥 항아리에 서늘한 달빛이 비치는 듯하다(肝膽每相照, 氷壺映寒月)”라는 시구를 들어 한중 양국 국민 간의 깊은 우정을 논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이 이웃 관계에 사드문제로 인해 빨간 불이 켜지고 있는 느낌이다. 얼마 전에 만난 중국작가들과 우연히 이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그 민감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 사드를 에워싸고 한국과 중국 두 이웃 사이의 이러한 갈등을 두고 떠 오른 한시 한 편이 있다.
육유의 초상화

남송 육유(陸游: 1125∼1210)의 『이웃을 일깨운다(諭隣人)』 이라는 7언절구다. 같은 제목으로 3수가 있는데 다음 두 번째 시가 와 닿는다.

《이웃을 일깨우며(諭隣人)》

相攻本出忿與疑, 서로 비난하는 일은 본래 분노와 의심에서 나오니

能不終訟固已奇。 송사를 그만두지 않는 것이 원래 비정상인 것을

訟端可窒君試思, 분쟁은 그대의 자유로운 생각을 막히게 하리니

歲時隣里相諧嬉。 제 때에 이웃과 서로 웃음으로 화합하세나

[주석]

▶諭, 일깨우다, 깨우치다. 이 시 제목은 원래 ‘論隣人’으로 되어 있으나, ‘諭隣人’이 맞다.

▶相攻, 서로 공격하다, 서로 비난하다.

▶奇, 기이하다, 특별하다.

▶訟端, 소송, 송사.

▶窒, 막다. 질식하다.

▶試思, 궁리하다. 시험적으로 생각하다.

▶歲時, 세시, 제 때.

▶諧嬉, 즐겁게 화해하다. 놀며 화합하다.

◆남송의 대표 시인, 육우(陸游) 60년간 1만 수

‌이 시를 쓴 육유(1125-1210)는 자가 무관(務觀)이고 호가 방옹(放翁)으로 현재의 저장(浙江) 성 사오싱(紹興) 사람이다. 부친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 배로 당시 수도인 변경(汴京, 현재의 開封)으로 가다가 화이허(淮河) 배 위에서 출생하여 이름을 “유(遊)”라고 지었다 한다. 3세 때 북송이 멸망하자, 부친과 함께 남중국을 떠돌아다니며 전쟁의 고통을 치러야 했으니, 평생도록 북방을 차지한 금나라를 몰아내고 옛 영토를 수복할 것을 주장한 애국시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남송의 대표시인으로 60년간 1만 수에 가까운 시를 남겼다. 금나라에 끝까지 항쟁할 것을 주장하고 남송 내 투항파를 비판하는 시, 격앙된 애국적 열정과 뜻을 이루지 못하는 비분강개한 심경을 담은 시, 전원 풍경과일상생활을 그린 시, 애정을 노래한 시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의 두 가지 애국적인 테마의 시가 주류를 이룬다.

시집으로는 『검남시고(劍南詩稿) 』가 있다. 그의 시 「서촌을 유람하며(遊山西村)」의 “산 첩첩 물 겹겹 길이 막힌 것 같더니, 버드나무 짙푸르러 어두워 보이고 꽃잎 활짝 핀 곳에 또 마을 하나가 있구나(山中水復無疑路, 柳暗花明又一村)”는 고금에 걸쳐 인구에 회자하는 명시구이다. 그리고 모친의 강압으로 이혼한 전처 당완(唐婉)에 대한 상심어린 그리움을 담은 시 「심원(沈園) 2수」와 시 「채두봉·홍소수(釵頭鳳·紅酥手:붉고 부드러운 손)」도 명작으로 꼽힌다.

육우가 전처 당완에 대한 상심 어린 애정을 그린 「채두봉·홍소수」

◆이웃 간 분노, 의심이 갈등의 씨앗

‌위의 시는 육유 일상 생활시의 하나로 이웃 간에 서로 비난하는 일이 원래 분노와 의심에서 나왔다고 보고, 분쟁은 제대로 생각하는 기능 자체를 질식시키니 중도에 송사를 그만두고 제 때 화합하자는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이웃과 갈등이 있더라도 어찌해야 하는지, 오늘날의 한중 관계에 의미심장한 암시를 던져주는 시구가 아닐 수 없다.

시진핑 주석이 말했듯이 “한중 간에는 인적인 연계가 있어 서로 친하고(人緣相親), 문화적 인연이 있어 서로 통하기(文緣相通) 때문에 인문교류의 추진에도 천혜의 이점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이웃 간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다 해도 많은 경우 육유의 시에서 갈파하듯이 “분노와 의심(忿與疑)”에서 나왔을 것이다. 본래 “비정상(奇)”인 이 상황에서 벗어나, 산 첩첩 물 겹겹 막힌 것 같던 길을 뚫고 “버드나무 짙푸르러 어두워 보이고 꽃잎 활짝 핀 곳에 또 마을 하나가 있구나(柳暗花明又一村)”는 경지로 들어갈 날이 머지않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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