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박재우의 한시고금

촉주로 부임해 가는 두소부를 보내며

왕발 두소부
박재우(朴宰雨) 한국외대 중국언어문화학부 교수 |입력 2016-08-23 14:08
“천하에 나를 알아주는 친구 있으면 하늘 끝에 있어도 곁에 있는 것 같다”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왕발의 『촉주로 부임해 가는 두소부를 보내며』 

 한국과 중국 간의 인문교류가 한층 성숙해 가는 요즘 갑작스런 사드 문제로 정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 갈등이 인문 및 문화 분야 교류까지 장애물이 돼서는 안 된다. 최근 창춘(長春)에서 열린 세계 중국문학 번역가 모임에서 중국문화 사업을 담당하는 장관급 인사를 만났다. 그는 “문화는 정치 등 모든 것을 초월한다”며 “정치 갈등이 있을수록 문학 교류는 더 잘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적인 대화에서의 반응이었지만 사드와 관련한 상당수 중국인들의 획일적인 조건반사적 반응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 감명을 받았다.

왕발의 초상화

당나라 왕발(王勃)의 “천하에 나를 알아주는 친구 있으면 하늘 끝에 있어도 곁에 있는 것 같으리(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시구가 떠올랐다. 2007년부터 시작된 한중문학인대회와 동아시아문학포럼 등을 통해 쌓아온 그 분과의 10년에 걸친 우정이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우선 이 오언율시의 원문을 해독해 보자.

<送杜少府之任蜀州(송두소부지임촉주)>
城闕輔三秦(성궐보삼진) 옛 삼진 땅의 옹위를 받고 있는 장안 성궐에서
風煙望五津(풍연망오진) 바람에 흩날리는 안개 속 옛 촉나라 땅 다섯 나
루터 쪽을 바라보네.
與君離別意(여군이별의) 그대와 작별하는 마음
同是宦遊人(동시환유인) 우리는 똑같이 지방관으로 떠도는 사람이지
海內存知己(해내존지기) 천하에 나를 알아주는 친구 있으면
天涯若比隣(천애약비린) 하늘 끝에 있더라도 곁에 있는 것 같으리니
無爲在岐路(무위재기로) 헤어지는 갈림길에서
兒女共沾巾(아녀공첨건) 아녀자처럼 눈물로 수건을 적시지는 마세


送杜少府之任蜀州 시 원문
[주석]
‌▶杜少府, 두는 성, 소부는 관직, 현의 검찰을 담당하는 관리. ▶蜀州, 지금의 쓰촨(四川) 성. ▶城闕, 장안 성궐. ▶輔, 보좌하다, 즉 옹위하다. 여기서는 수동적 의미▶三秦: 항우가 승리 후 진나라 땅을 셋으로 나누어 분봉한데서 연유, 현재의 산시(陝西)성 일대. ▶五津, 쓰촨 성 민강에 있는 나루터 다섯 개. ▶宦遊, 지방관으로 떠도는 것. ▶若, 같다. ▶比隣: 나란히 하고 있는 이웃, 혹 곁. ▶沾, 적시다.

이 시의 작자인 왕발은 자가 자안(子安)으로 현재의 산시(山西) 성 허진(河津)에서 650년경 태어나 27세인 676년 사망하였다. 시에 뛰어난 초당 4걸 중 한 사람이다. 16세에 과거에 급제해 조산랑(朝散郞)이라는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투계 관련 격문을 썼다가 고종의 노여움을 사서 장안에서 쫓겨났다.  3년간에 걸쳐 쓰촨 지역의 산천 경물을 두루 유람하고 많은 한시를 지었다. 671년 장안에 돌아와서는 괵주(虢州) 참군을 지냈으나 관노를 숨겼다가 또 그를 죽인 일로 죽을 죄를 범했으나 사면을 받았다. 이 시는 폄적(貶謫: 벼슬아치를 내치고 귀양을 보내는 일)을 당한 뒤 당시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長安)에 있다가 지기라고 할 수 있는 두소부가 역시 지방관으로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쓴 것으로 보인다. ‌ 

‌왕발은 27세의 나이에 자기 일로 베트남 경내에 두소부처럼 폄적당해 있는 아버지를 찾아보고 돌아오다 바다를 잘못 건너 익사하였다. 그는 변문이 뛰어난데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당시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등왕각서(滕王閣序)」가 있다.  

‌이 시는 송별의 명작으로 표면적으로는 “이별할 때 아녀자들처럼 울며 수건에 눈물이나 적시지는 말자”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고 고대 송별시의 처량한 기운을 일소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사실 “우정이 깊다면 강산도 막을 수 없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중국을 방문하여 집단여행을 하거나 각종 회의나 각종 활동에 참가하고 귀국하게 될 때, 중국의 지인들과 회식하거나 그들이 환송회를 베풀어주는 경우가 더러 있다. 작별 인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상황에 적합한 시구를 떠올려 읊어 자신의 뜻을 표현할 수 있다면 중국인들로부터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는 찬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왕발의 이 시를 중국어로 읊거나 필담으로 써 보인다면 어떨까?  

‌아니 세계화 시대에 맞추어 다음과 같이 변형시켜도 좋을 것 같다. '해내'를 '해외'로, '천애'를 '세계'로 고치는 방법이다. 중화 중심 시대에는 '해내'가 본래 '천하'의 의미가 있고, '천애'가 본래 '세계'의 의미가 있다고 해도, 중국 이외의 지역 사람들에게는 의미 있는 해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의 운치는 덜 난다 해도 재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해외존지기, 세계약비린(海外存知己, 世界若比鄰).”  
‌‌천하에 나를 알아주는 친구가 있다면, 전 세계가 바로 이웃과 같으리.   

‌중국인들은 정치적 입장이야 어떻든 중국 문화, 특히 한시나 고전 등 중국의 심층적 정신문화를 잘 이해하는 외국인을 존경하고 진정한 친구로 생각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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