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박영대의 문화로 보는 중국인

중국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문화재는 뭘까?

박영대(朴永大) 전) 초대 북경문화원장 |입력 2016-11-21 00:11
한국에는 국보 1호 숭례문, 보물 1호 동대문 등이 있다. 하지만 2008년 2월 숭례문이 불타고 부실공사로 복원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여전히 높다. 지난해 10월 일반시민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64.2%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 1호로 꼽아 남대문(숭례문)의 20%를 크게 앞질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보와 보물의 순서를 매기는 호수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부터 만들어진 이 순서는 나중에 발견된 진귀한 유물은 어쩔 수 없이 번호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어 형평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매번 새로운 유물이 나올 때마다 순서를 다시 정하기도 어렵다.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최고 문화재는?

중국과 일본은 이런 번호가 없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나아가 자랑스러워하는 최고의 문화재는 있다. 중국 언론은 가끔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벌여 진국지보(鎭國之寶-국가 최고 문화재)를 발표한다. 그 중에서도 의미 있는 것은 2013년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가 발행하는 격주간지 국가인문역사(國家人文歷史)가 고고, 문화재 분야 전문가 9인을 초청해 선정 보도한 '중국 9대 진국지보'다. 올해도 중국일보(中國日報) 등 여러 매체가 중국 역사상 20대 진국지보를 선정, 보도했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통해 진국지보를 선정하다 보니 매체에 따라 선정 작품이 다른 게 적지 않다. 중국 정부도 공식 문서에서는 절대로 이를 활용하지 않는다. 중국 국립고궁박물원 전임 원장 정신먀오(鄭欣淼)는 “나라의 최고 보물인 진국지보를 선정하는 것은 고사하고 고궁박물원의 최고 보물, 즉 고궁박물원 진관지보(鎭館之寶)를 뽑는 일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뭔지, 나아가 문화재 시장에서 가격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다.
중국일보가 여론조사를 거쳐 선정한 제1호 진국지보, 양금수수마노배(鑲金獸首瑪瑙杯) 염소머리 술잔으로 입 부분을 금으로 장식했다.
◆진국지보 1호는 금장식한 염소머리 옥잔

중국일보가 선정한 진국지보 1호는 양금수수마노배(鑲金獸首瑪瑙杯)다. 선정 이유는 옥의 빛깔이 특히 빼어나고, 그 모습이 특이한데다, 당(唐)나라 때 유물이라는 점이 고려됐다. 2호는 ‘대우치수대옥산(大禹治水大玉山)이다. 우임금이 치수를 제대로 한 역사적 사실을 산처럼 생긴 옥에 조각한 옥제품이다. 제12호 중산정왕유승의 금루옥의(中山靖王劉勝的 金縷玉衣), 제19호 독산대옥해(瀆山大玉海)도 옥이다. 20대 진국지보 중 옥제품이 무려 4개나 된다. 중국인들이 옥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 엿볼 수 있다. 중국만큼 옥 종류가 많고 따라서 옥 제품이 다양한 나라도 없다.

◆어린아이 모습의 도자기 베개가 제3호서 선정돼

제3호는 정요해아침(定窯孩兒枕)으로 도자기 종류다. 송나라 백자 베개로 국립고궁박물원 소장품으로 정요는 도자기 종류를 말한다. 도자기 베개는 수나라 때부터 보이는데 이 작품은 먼저 도자기를 구운 후 다시 정밀하게 조각을 한 것으로 어린아이 모습을 한 형태와 사용된 기예의 희귀성 등에서 중국의 그 많은 도자기들을 모두 물리치고 최고의 보물로 선정됐다. 고대로부터 중국인들에게는 도자기 베개가 머리와 눈을 맑게 해, 나이 들어서도 책을 읽는데 불편하지 않게 해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도자기는 영어로 'China'로 불릴 만큼 도자기의 본 고장은 중국이다. 나중에 중국의 도자기가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인들이 소뼈 가루를 섞어 고령토만으로 만든 일반 도자기보다 강도가 강하고 가볍고 질진 '본 차이나(Bone China)'를 개발했지만 여전히 원조는 중국이다.
제3호 진국지보 정요해아침(定窯孩兒枕)
제13호 무왕벌주친력기(武王伐紂親歷記)는 1976년 산시(陝西) 성에서 출토된 청동 궤짝이다. 궤의 내벽에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정벌한 정확한 시기가 기원전 1046년 1월 20일이라는 것을 확정할 수 있는 명문을 새겨놓았다. 제14호 진석고문(秦石鼓文)은 대진제국(大秦帝國)의 동방훙(東方紅:1966-1978 사용된 중국 비공식 애국가의 별칭, 첫 소절의 첫 단어)이라는 별칭을 가진 석각벽화다. 학계의 일치된 학설은 아직 없지만 많은 학자들이 진경공(秦景公) 때 새겨진 것으로 본다. 제15호 서한병법(西漢兵法)은 유명한 손무(孫武)의 손자병법(孫子兵法)이 새겨진 대나무 책자(竹簡)다.

제20호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2010년 상하이세계박람회 중국관에 IT 및 첨단 영상기술이 복합된 움직이는 그림으로 구현되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폭 25.2cm, 길이 528.7cm의 대작으로 북송 장택단(張擇端)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청명절을 즐기는 남송의 수도 카이펑(開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 보물 순서 매기기 어렵지만 언론기관, 상업적 목적으로 여론 조사해 발표

모두가 뛰어난 문화재이고 보물들이지만, 이것이 과연 중국의 모든 보물 중에서 각 분야 최고의 보물이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많은 다른 의견이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국보나 보물을 지정하지만, 그 안에서는 별도의 서열을 매기지 않는 까닭이다. 2013년에 선정된 중국 9대 진국지보는 지난해에도 여러 매체가 다양한 형태로 보도하였는데 대체적으로 상업적 목적에서 다뤄졌다. 따라서 사고 팔수 없는 건축물 등 이동 불가능한 문화재는 제외됐다. 물론 이렇게 해서 선정된 진국지보 역시 모두 매매 불가지만 이를 통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유물은 가격을 가늠해볼 수 있다.
진국지보 제7호로 선정된 태양신조금식은 제6호 청동신수와 함께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강족(羌族)의 유물이다. 밝음을 추구하고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중화민족의 정신적인 풍모를 잘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4마리 불사조가 태양을 둘러싸고 있는 이 금식은 태양숭배와 관련된 유물이다. 중국 정부는 이 유물을 최근 중국의 우주굴기와도 연계시켰다. 2005년엔 이 유물을 자수 작품으로 재현해 신주 6호(神舟 6號) 우주선에 실어 우주여행을 보냈다. 중국 언론들은 일제히 천년의 비천몽이 실현됐다고 보도했다. 망치를 가지고 손으로 일일이 두드려 제작한 이 금식은 제작기법보다는 현대적 감각에 뒤지지 않는 디자인의 뛰어남이 특히 빛난다. 직경 12.5cm, 두께 0.02cm, 무게 20g이다.
제7호 진국지보, 태양신조금식(太陽神鳥金飾) 4마리의 불사조가 태양을 감싸 안은 모습이다.
◆중국, 지정 문화재 무려 4215만8600여 점

  중국의 문화재 관리체계는 한국과 다르다. 우선 이동 가능한 문화재와 이동 불가능한 문화재를 나누고, 이동 가능한 문화재 중 진귀한 문화재와 일반 문화재를 나눠 진귀한 문화재는 그 진귀함에 따라 1급, 2급, 3급으로 나눈다. 이동 불가능한 문화재는 각각의 가치에 따라 전국중점문화재보호등급, 성급문화재보호등급, 시‧현급문화재보호등급으로 나눈다. 1961년 제1차 전국중점문화재보호등급 명단을 발표한 이후 2014년 제7차까지 총 4,291만 건의 전국중점문화재보호등급이 확정됐다. 대상은 혁명유적지, 석굴사, 고건축, 석각, 고대유적지, 고분 등이다.
중국문화부의『중국문화문물통계연감2015』,『2015년문화발전통계공보』에 의하면 2015년 중국에는 총 4139만1900여 점의 이동 가능한 문화재가 있다. 그 중 1급문화재가 10만 8700여 점, 2급이 71만5400여 점, 3급이 388만8000여 점으로 진귀한 문화재로 분류된다. 그 외 일반문화재는 3667만9800여 점이다.

2008년 베이징(北京)올림픽을 기점으로 중국이 각종 문화 관련 콘텐츠와 시설인프라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에 7년 전인 당시와의 비교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중국문화문물통계연감2008』에 의하면 2008년에 총 2567만7300여 점의 이동가능한 문화재가 있었고, 그 중 진귀한 문화재 1급이 5만9700여 점, 2급이 156만9400여 점, 3급이 249만6800여 점이었다. 2008〜2015 기간 중 이동 가능한 문화재는 1571만 4600여 점(61.2%)이 증가했고, 그 중 국가적 보물급에 해당되는 1급 문화재가 4만9000여 점(82.0%)이나 증가했다. 2급과 3급문화재도 53만7200여 점이 증가했는데 상당수 2급 문화재는 3급으로 조정됐다.

◆ 중국 정부, 문화재 가치 재인식, 최근 문화재 지정 크게 늘려

문화재는 공산품처럼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가 없는 물건이다. 역사, 예술, 학술, 과학적으로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만 문화재로서 자격을 부여받는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진귀함까지 갖추어야 1급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어떻게 이런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1급 문화재가 증가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문화재의 금전적 가치가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문화재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동안 묻혀있던 수많은 문화재가 나타나게 된다. 지난해 7월 마카오 공예품 경매에서 제3호 진국지보가 생산된 정요(定窯)의 미인침(美人枕), 백자 베개 1점이 3억2000만 위안(한화 약 560억 원)에 낙찰되어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다음으로 중국에 불어 닥친 각종 개발붐도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본다. 일례로 장강(長江·양자강)의 물을 베이징으로 끌어오는 남수북도(南水北到)사업(베이징과 항저우(杭州) 간 고대 운하 복원사업) 노선 상에 2,000여 곳의 문화유적지가 있었고, 그 중 800여 곳 이상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문화재들이 출토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의 지방정부가 문화재를 활용한 관광 등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산시 성 등 비교적 낙후된 지역에서 박물관과 문화유적을 활용한 관광은 대단히 중요한 수입원이 된다. 2014년 산시 성의 문화재 관련 관람료 수입은 국립기관이 8억6000만 위안(한화 약 1505억 원), 성립(省立)기관이 6억5000만 위안(약 1137억 원)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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