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쓰이
판쓰이(潘石屹)는 SOHO중국의 창업주다. 재산이 300억 위안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작 본인은 한 번도 계산해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거부(巨富)다. 2013년에 발표된 중국의 신흥부자 순위에서는 181억 위안으로 24위에 올랐다.
젠와이(建外)SOHO에서 열린 한국건축가 승효상의 「사유의 건축」 중국어판 출판기념 학술회의에 갔다가 토론자로 참석한 판쓰이, 장신(張欣)부부와 인사를 했다. 자신들의 토론순서가 끝나고도 4시간이 넘는 토론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신선했다.
얼마 후 광화시루(光華西路)에도 SOHO중국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비상시 방공호로 쓰이게 되는 지하 3층에 한국문화원과 공동으로 사용하게 될 부분이 생겼다. 한국문화원도 한번 보고 싶다며 인사 겸 판 회장이 방문했다.
궁금했다. 중국의 부동산과 건설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신흥재벌이 평상시에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하는지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아닌가. 타고 온 차량은 예상했던바 그대로 BMW리무진 최고급 사양이다. 차량번호도 중국정부의 고위층 차량에만 붙는다는 특별한 것이다.
그런데 이 대단한 거부가 입고 온 상의는 이미 누렇게 색이 바랜, 팔목부분을 살짝 걷어붙인 와이셔츠 뿐 이었다. 그 뿐 아니라, 와이셔츠의 목 칼라와 팔목의 깃이 헤어져 있었다. 세상이 알아주는 큰 부자가 이런 옷차림을 하고 호화스러운 차량에서 내리는 모습이 어쩐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도 수십 년 된 점퍼와 운동화 차림으로 빈곤한 농촌과 재해피해지역을 방문하여 국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은 바 있지만 어쩐지 얼른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선더룽(沈德龍)은 고대 오나라 자수의 진수를 이어 받아 소주 자수로 개발해낸 명인이며 상당한 규모의 자수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다. 2008년 북경올림픽 때는 고대 중국의 체육종목 경기장면을 자수 작품으로 제작하여 공식기념상품으로 판매하기도 했는데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쌍사자 모형
베이징(北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올 즈음에 평소 알고 지내던 선 작가가 찾아왔다. 인사가 끝나고 일어서면서 작은 꾸러미 하나를 내어 놓는다. 열어보니 화려하게 채색을 입히고 머리에는 앙증맞은 칼을 한 자루씩 달고 있는 도자기 사자 한 쌍이다. 이 사자 한 쌍의 효용을 설명하는데 내용이 재미있다.
이 사자 한 쌍을 현관 출입구에 잘 모셔두어야 한단다. 그러면 집안에 돈이 아무리 많아도 외부에서는 알 수 없다며 진지한 표정이다. 그렇다면 자금성에서부터 북경의 그 수많은 사합원(四合院), 심지어 새로 지은 초고층 건물의 입구에까지 당당하게 자라잡고 있는 한 쌍의 멋진 사자들의 역할이 집안의 돈 냄새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기 위한 것이란 얘긴가.
초라한 외형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부를 들어내지 않으려는 중국인들의 오랜 습성이 비단옷을 입으면 그 위에 겉옷을 걸쳐서 화려함을 감추어야 한다는 중용(中庸)의 의금상경(衣錦尙絅) 정신과 연계되어 있다면 판 회장이 평소에 애용한다는 낡은 와이셔츠와 선 작가의 사자 한 쌍은 바로 그러한 정신세계의 실체적 구현이다.
판쓰이
도광양회(韜光養晦)와 화평굴기(和平崛起)의 시대가 이미 지나가서 그런지 최근 몇 년간 중국에서는 권력자들과 그 자녀들의 지나친 사치와 너무나도 눈에 띠는 방탕한 행동들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 공산청년당의 활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예사롭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판 회장의 낡은 와이셔츠나 선 작가의 사자 한 쌍같이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해 왔던 특별한 의식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중국인들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남아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속단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대문 앞을 지키는 사자 한 쌍을 지극히 사랑해왔고 의금상경의 정신을 중시해 온 중국인들이 혹시 사드(THAAD)를 자기집안의 금은보화를 탐지해 내려는 외부 사람들이 세우려고 하는 자기 집 대문 앞의 역방향 최첨단 전자사자 한 쌍 정도로 생각하고 반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사드 배치가 인류 차원의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무시무시한 전략무기로 중국인들이 갖기를 원하는 진귀한 보물을 탐지해 내려는 시도라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설치를 추진할 특별한 이유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