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 북한 식당에 파견됐던 북한 종업원 13명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이후 북한 당국의 외화 상납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2016년 3월 탈북해 다음달인 4월 한국에 입국했다. (사진 통일부 제공)
요즘 북한을 빠져나와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로 가서 정착하는 사람이 많이 늘고 있다. 뚜렷한 최근의 추세는 빠져나오는 북한 사람들의 신분과 계층이 점차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습 왕조 식의 공산독재라는 형용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나라 북한, 그 가혹한 왕조 식 전제에 시달리다 결국 그곳을 도망쳐 자유를 찾는 사람들이 바로 탈북자(脫北者)다.
‘탈북’이라는 단어는 근래에 만들어진 새 조어(造語)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북한(北)을 빠져나오다(脫)’라는 뜻. 중국 정부는 2002년경 제법 많은 탈북자들이 베이징(北京) 주재 외국 공관의 담을 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이들에 대한 처리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초기의 중국 외교부는 ‘탈북자’라는 한국식 명칭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불법으로 (중국의) 국경을 넘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不法越境者(불법월경자)’ 등으로 호칭했다. 탈북자의 수가 많아지면서 그 중국식 명칭은 원래의 뜻에 가까운 ‘북한으로부터 도망친 사람’이라는 의미의 ‘逃北者(도북자)’로 바뀌었다. 이제는 ‘탈북자’라는 한국식 명칭도 혼용하고 있다.
탈북의 행위는 결국 ‘망명(亡命)’이다. 이 망명이라는 단어는 일차적 한자 의미만으로 볼 때는 이해가 쉽지 않다. ‘죽다’ ‘사라지다’ ‘없다’라는 뜻의 亡(망)이라는 글자에, 목숨을 의미하는 命(명)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목숨이 사라지다? 그냥 죽는 것? 죽은 목숨?…. 뭐, 이런 식의 의문이 이어질 수 있다.
중국 고전에 등장하는 이 ‘망명’이라는 단어의 뜻풀이는 대개 이러하다. 우선 앞의 亡(망)은 ‘빼내다’ ‘없애다’의 의미, 뒤의 命(명)은 ‘이름’ 또는 ‘호적’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단어의 뜻은 ‘(원래 살던 곳에서) 이름을 지우고 빠져나감’이다. 이 때문에 망명은 도망(逃亡)과 동의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망명은 또 ‘죽음을 무릅쓴다’는 의미도 있다. ‘없다’라는 앞 글자의 새김, ‘목숨’이라는 뒤 글자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사용한 경우다. 이 뜻은 다시 발전해 ‘목숨 걸고 덤빈다’의 의미도 획득했다. 그러나 한국식 한자 사용은 ‘정치적인 동기 등에 따라 살던 곳을 빠져나와 다른 곳에 정착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외에 주재했던 북한 외교관, 특수 계층 출신이랄 수 있는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 김정은의 건강을 옆에서 챙겼던 권력 핵심부의 전문가들도 이제는 탈북 행렬에 뛰어들고 있다. 청와대는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았던 것인지,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탈북을 장려하는 발언까지 하고 있다.
사물이 궁극에 달하면 상황은 전변(轉變)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북한의 완고하며 잔혹하기 짝이 없는 지배 체제도 이제 끝장에 닿는 상황인지 모른다. 늘 대비해야 하는 일이 북한의 급변 사태다. 동토(凍土)에서 벌어지는 많은 상황을 특별히 주시해야 하는 때다.
<한자풀이>
脫(벗을 탈, 기뻐할 태): 벗다. 벗어나다. 벗기다. 사면하다. 풀다. 나오다. 빠지다. 떨어지다. 거칠다. 소홀하다. 잃다. 혹시. 만일. 전부. 매우. 기뻐하다 (태).
北(북녘 북, 달아날 배): 북녘, 북쪽. 북쪽으로 가다. 달아나다, 도망치다 (배). 패하다 (배). 등지다, 저버리다 (배). 나누다, 분리하다 (배).
越(넘을 월, 부들자리 활): 넘다, 건너가다. 넘기다, 넘어가다. 초과하다. 지나다, 경과하다. 빼앗다. 멀다. (물정에)어둡다. 어기다. 흐트러지다. 떨어뜨리다, 떨어지다. 드날리다.
亡(망할 망, 없을 무): 망하다, 멸망하다, 멸망시키다. 도망하다, 달아나다. 잃다, 없어지다. 없애다. 죽다. 잊다. 업신여기다, 경멸하다. 죽은, 고인이 된. 없다 (무).
命(목숨 명): 목숨, 생명, 수명. 운수, 운. 표적, 목표물. 명령, 분부. 성질, 천성. 말, 언약. 규정, 규칙.
<중국어>
脫北者 tuōběizhě: 일반적으로는 脫 대신 逃táo를 더 많이 쓴다. 그러나 脫北者로 표기하는 경우가 점차 느는 추세다.
越境 yuèjìng: 국경 등의 경계선을 넘는 행위. 훌쩍 건너뛴다는 뜻의 跨越kuàyuè라는 단어도 많이 쓰인다.
亡命 wángmìng: 우리의 ‘망명’과 같이 쓰인다. 이 단어와 비슷하게 쓰이는 게 ‘보호를 요청하다’라는 뜻의 尋求庇護(寻求庇护 xúnqiúbìhù)다. 앞의 尋求는 ‘찾다’ ‘요구하다’, 뒤의 庇護는 ‘보호’ ‘피난’ 등의 새김이다.
流亡 líuwáng 이리 저리 떠도는 流落, 그리고 逃亡이라는 두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다. 직접적으로 ‘망명’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영토를 빼앗겨 해외에 떠도는 망명정부를 일컬을 때 흔히 流亡政府 líuwángzhèngfǔ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