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유광종의 한자와 중국어

歲暮 그리고 年, 歲, 載, 祀

유광종(劉光鍾)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입력 2016-12-23 00:12
저무는 해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 황량한 벌판 저 너머로 해가 저문다. 기울어가는 한 해 마지막 무렵을 우리는 세밑, 또는 세모(歲暮)로 적는다. <사진=조용철 사진작가>
  겨울 복판으로 접어드는 요즘 비가 이틀 연속 내린다. 시후(時候)에는 맞지 않는 현상이다. 낯설기는 하지만 그래도 곧 겨울의 추위는 깊어지리라는 예보다. 해 저무는 무렵이 요즘이다. 우리는 보통 세밑, 세모(歲暮)라는 말로 한 해 저무는 무렵을 일컫는다.

“歲歲年年人不同(세세년년인부동)”이라는 말이 있다. 옛 시구에서 먼저 나온 뒤 후대의 중국 시단에서 즐겨 썼던 말이다. 풀자면 “해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뜻이다. 앞 구절에는 “해마다 피는 꽃은 서로 비슷해도(年年歲歲花相似)”라는 말이 등장한다. 세월이 흘러도 경물(景物)은 변함이 없지만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사람의 모습은 나날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라는 우리 옛 시조가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그렇게 시간은 꾸준히 지나가고, 사람의 인생은 덧없이 흘러간다. 2016년의 시작을 알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모에 이르고 말았다.

해를 가리키는 한자어는 年(년), 歲(세), 載(재), 祀(사) 등이 있다. 年(년)은 농작물 수확을 가리키는 글자로 처음 등장했다. 따라서 한자 단어 중 유년(有年)은 풍년, 대유년(大有年)은 대풍(大豊)을 가리킨다. 가을걷이, 즉 농작물 수확으로 1년이 지나감을 기억하면서 지금의 ‘해’라는 뜻을 얻었다.

歲(세)는 원래 太歲(태세), 즉 태양계 행성의 하나인 목성(木星)을 가리켰다.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주기가 11.86년이다. 지구에서 볼 때 매 해마다 특정한 구역에서 머물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목성의 위치를 견줘 해를 따졌다고 한다.

載(재)는 물건 등을 ‘싣다’의 뜻이다. 정확하게 어떤 이유인지는 추정키 어렵지만, 이 글자 또한 ‘해’라는 뜻을 얻었다. 천년에 한 번 맞을까 말까하는 기회를 이야기할 때 ‘千載一遇(천재일우)’라고 적는 경우다. 祀(사) 역시 원래는 ‘해’의 뜻이었으나, 나중에 왕조 차원이나 개인 가정에서 벌이는 ‘제사’의 뜻이 매우 강해져 지금은 쓰지 않는 편이다.
신장위구르 고비의 널따란 황무지에 들어서기 전에 있는 둔황(敦煌)의 명사산 사막 위로 석양의 빛이 잦아들고 있다. <사진=조용철 작가>
역대 중국의 최고 시인이라고 하는 이백(李白)은 이런 말을 남겼다. “무릇 하늘과 땅이라는 존재는 만물이 거치는 여관이요, 시간이라는 것은 영겁을 스쳐가는 나그네(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라고 말이다. 제법 운치가 있어 보인다.

장자(莊子)가 인생을 바라보는 눈길도 다르지 않다. 그는 “하늘과 땅에서 살아가는 인생이란 마치 좁은 문틈으로 하얀 말이 지나가는(白駒過隙)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했다. 조그맣게 벌어진 문틈으로 하얀 말이 지나가는 속도야 그야말로 순식간(瞬息間)이다. 눈 감았다 뜨고(瞬), 들숨 날숨 한 번 들었다 나가는(息) 사이(間) 말이다.

매우 낭만적이었던 시인 이백(李白)은 “그러니 옛 사람이 촛불 켜들고 밤새 노닐었던 일은 다 이유가 있음이라”며 실컷 놀기를 권유한다. 촛불 켜들고 밤새 노니는 일은 한자로 秉燭夜遊(병촉야유)다. 전깃불로 밤이 대낮처럼 밝은 현대사회라 치더라도 그렇게 마구 밤길을 떠도는 일은 삼가는 게 좋다.

주저앉았다가도 훌훌 털고 일어나 길을 가는 게 인생이다. 휙~스쳐간다고는 하지만 인생은 등에 큰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일이다. 한자로 적으면 負重致遠(부중치원)이다. 짧은 인생, 시간 탓만 하고 있기에는 어딘가 허전하기 짝이 없다. 
신장위구르 지역이 펼쳐지는 광막한 대지 위에 해가 저물면서 땅거미가 내리는 모습이다. <사진=조용철 작가>
올해 세밑도 마찬가지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세제(歲除)라고 적는다. 여기서 除(제)는 ‘가다’ ‘바뀌다’의 뜻이다. 해가 바뀌는 마지막 날에 적합한 표현이다. 그 날 밤은 그래서 除夕(제석), 除夜(제야)라고 적는다. 밤새 뜬 눈으로 조심스레 해의 바뀜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중국에서는 守歲(수세)라고 부른다.

세모가 되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올해만큼 다사다난했던 해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세밑만큼은 차분한 마음으로 정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한자 풀이>

載 (실을 재, 떠받들 대): 싣다. 이다. 오르다, 올라타다. 행하다, 시행하다. 비롯하다, 개시하다. 맡다. 진설하다. 해, 년.

‌祀 (제사 사): 제사. 해. 제사지내다.

‌駒 (망아지 구): 망아지. 새끼 말. 짐승의 새끼. 젊은이. 흩어지고 모여들지 않는 모양.

‌隙 (틈 극): 틈, 벌어진 틈. 구멍. 흠, 결점. 겨를, 여가, 짬. 원한, 불화. 놀리고 있는 땅. 갈라지다, 터지다. 비다, 경작하지 않다. 이웃하다.

‌瞬 (깜짝일 순): 깜짝이다. 보다. 주시하다. 잠깐. 눈 깜짝할 사이.

‌息 (쉴 식): 쉬다. 숨 쉬다, 호흡하다. 생존하다. 살다, 생활하다. 번식하다. 자라다, 키우다. 그치다, 그만두다, 중지하다. 망하다.

‌秉 (잡을 병): 잡다, 쥐다. 장악하다. 처리하다. 지키다, 간직하다. 따르다, 순종하다. 헐뜯다. 열 엿 섬(곡식을 세는 단위). 볏단. 자루.


<중국어 & 성어>

除夕 chú xī: 우리는 보통 除夜(제야)라고 적고 부른다.

‌岁(歲)除 suì chú: 음력 12월 마지막 날.

‌千载难逢(千載難逢) qiān zǎi nán féng: 우리가 흔히 쓰는 성어 千載一遇(천재일우)와 거의 같다. 천년에 한 번 맞이하기 어려운 기회의 뜻이다. 載(재)는 ‘싣다’의 뜻일 때는 4성, ‘해’를 가리킬 때는 위와 같이 3성으로 읽는다.

‌白驹过隙(白駒過隙) bái jū guò xì: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이다. 풀이는 위와 같다. 아주 짧은 시간을 나타낼 때 쓰는 성어다.

‌秉烛(燭)夜游(遊) bǐng zhú yè yóu: 본문 참조. 옛 시구에 자주 등장했고, 이백이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라는 글에서 인용해 유명해졌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라는 우리 민요와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负(負)重致远(遠) fù zhòng zhì yuǎn: 무거운 짐(重)을 지고(負) 먼 곳(遠)에 이른다(致)는 뜻이다. 인생살이의 자세를 이야기할 때 곧잘 등장한다.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