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유주열의 한중일 삼국지

후버 대통령의 중국어

유주열(柳洲烈) 현)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입력 2016-08-23 14:08
스탠퍼드 대학은 제1회 졸업생인 후버대통령을 기념하여 후버타워를 세웠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의 스탠퍼드 대학을 찾았다. 대학의 상징인 후버 타워에 올랐다. 스페인 풍의 아름다운 대학 의 캠퍼스가 한눈에 들어 온다. 대학의 건물군이 베이징의 사합원(四合院) 처럼 사방으로 옹기 종기 모여 있는 것이 특이 했다. 후버 타워에서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미중간 갈등의 파고를 생각했다.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 중국이 지나치게 어깃장을 놓는 것도 결국 미중 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후버 대통령이라면 오늘의 미중 관계를 어떻게 풀어 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허버트 후버(1874-1964) 대통령은 이곳 스탠퍼드 대학의 제1기 졸업생이다. 그를 재선에 실패한 무능한 대통령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시대에 앞선 인도주의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는 젊은 시절 광산 기술자로 중국에 부인과 함께 근무하여 중국을 이해하고 중국어가 유창하였다.

후버 대통령은 미시시피 강 상류의 아이오와 주의 가난한 집안출신으로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못되었다. 마침 캘리포니아의 정치가이며 거부였던 스탠퍼드 부부가 요절한 아들을 위해 스탠퍼드 대학을 설립하여 가난한 학생을 학비면제로 입학 시켰다. 후버 대통령은 이 대학에서 지질학(geology)을 전공하여 광산 기술자로 활동하게 된다.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루 헨리 후버
‌후버 대통령은 25세가 되는 1899년 지질학과의 클라스메이트인 루 헨리와 결혼하였다. 두 사람은 당시 미지의 세계인 중국(淸) 텐진으로 건너 가 영국계 광산회사에 취직을 하였다. 그 무렵 중국에는 의화단의 난이 일어난다. 1898년 4월부터 기독교의 선교활동이 왕성했던 산동성 지역이 극성스러웠다.

의화단은 철도 전선 교회 등 서양에서 들어 온 것은 무조건 파괴하고 선교사를 살해하였다. 당시 실권자 서태후의 암묵적 지원으로 고무된 의화단은 1900년 6월 베이징의 외국공관을 포위 공격하였다. 의화단 세력이 늘어 나면서 서구 열강들의 불안이 증대된 상황에서 외교공관이 위기에 놓이자 영국 미국 러시아 등 연합군은8개국은 연합군을 조직하여 출병을 결정하였다.

영국의 해군 사령관 시모어의 지휘아래 연합군은 6월17일 텐진 포대를 점령하고 7월14일 텐진시를 함락시켰다. 이 때 텐진에 있던 후버 대통령 부부는 위험을 무릎쓰고 의화단의 공격대상이 된 텐진 거주 외국인의 안전을 위해 활동하였다. 그 후 연합군의 활동은 찰톤 헤스톤 과 에바 가드너 주연의 1960년대 영화 “베이징의 55일”에 잘 나타나 있다.

허버트 후버 미국 제31대 대통령

후버 대통령의 중국에서의 인도주의적 활동 경험은 1914년 8월 1차 세계대전 발발 시에도 재연된다. 그는 당시 런던에 주재하는 민간인 신분으로 영국에 거주하거나 유럽에 여행중인 수 많은 미국인을 도와주는 자원봉사활동을 조직 그들을 안전하게 귀국시킨다.

1차 세계대전시에는 독일에 의해 침공당한 벨기에인이 식량위기에 빠지자 이를 구제하기 위한 전국조직을 결성하여 벨기에인을 기아에서 구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후버 대통령의 중국에서 시작한 인도적 지원활동은 그를 미국의 31대 미국 대통령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후버 대통령 부부의 중국어 사랑은 대통령 재임 시 백악관에서 주로 중국어로 대화하여 도청을 예방하고 프라이버시 침해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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