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북쪽으로 230km 떨어진 곳에 청더(承德)라는 도시가 있다. 우리에게는 ‘박지원의 열하(熱河)일기’로 유명해진 청더지만 중국에서는 중국 황제들의 여름 휴양지, 즉 피서산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허베이(河北)성에 위치한 청더는 당초엔 조용한 그리고 외진 골짜기였지만 자연이 수려하고 풍광이 아름다운데다 여름에 시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청나라 시절 황제의 여름 피서지로 대대적으로 개발됐다.
1703년 강희(康熙)제 때 시작된 피서산장의 대공사는 옹정(雍正)제를 거쳐 건륭(乾隆)제 재임 시절인 1792년 완성됐다. 공사기간만 무려 90년으로 별궁과 정자, 인공호수, 인공섬, 정원 등을 대대적으로 조성했다. 베이징의 화려한 건축물은 서양의 침략에 따라 여러 차례 훼손되고 소멸됐지만 이곳 건물들은 대부분 그대로 보존돼오다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피서산장은 120여 동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전체 면적은 5.6㎢. 주위의 담장 둘레만 10km에 달한다. 중국 최대의 황가 정원으로 칭(靑) 황제의 여름 궁전이었으며 연암 연행록의 제목이 된 ‘열하(热河)’는 현재의 청더(承德) 시로 열하라는 이름은 피서산장으로 유입되는 하천이 겨울에도 얼지 않은데서 유래됐다.
1708년 강희제가 교통과 전략의 요충지인 이곳에서 처음으로 행궁을 짓고 1711년에 36경을 조성하고 확장하였다. 이후 칭(靑) 나라 황제들이 이곳에서 피서를 즐기면서 이곳은 정무를 보는 행궁이 되었다. 피서산장은 이처럼 궁전으로서 기능도 했기 때문에 청더이궁(承德離宮)으로도 불리고 있다.
청더(承德)로 가는 고속도로 관문
올해 여름 피서산장(避暑山莊)에 더위를 피하러 온 관광객들이 산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있다.
입장료는 성인 1인 145위안(元·한화 약 1만1800 원), 만 65세 이상 노인은 70위안(元)이다. 이곳은 피서산장의 정문인 뤼정먼(麗正門)이다. 편액에 ‘麗正門’이란 한자를 비롯하여 만주어(满语·만어), 티베트어(藏语·장어), 위구르(维吾尔语)족 언어, 몽고어(蒙古语) 5개 문자가 병기돼 있다.
피서산장은 앞쪽은 행정구역, 왼쪽은 산지구역, 중앙의 호수 구역은 평지구역이다. 북쪽과 동쪽으로 외팔묘(外八廟)인 보타종승지묘, 수미복수지묘, 보녕사, 안원요, 보락사, 부인사 등이 피서산장을 둘러싸고 있다. 행궁구역은 남쪽부터 북쪽으로 외오문(外午問) 궁문(宮問) 서지서옥(西知書屋) 운산성지(雲山胜地) 등의 순으로 배치돼 있다.
안으로 들어오니 우측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면으로 보니 황제의 집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외팔묘(外八廟)는 청더 시에 있는 피서산장을 북쪽에서부터 둘러싼 절과 사당들을 말한다. 강희제, 건륭제가 티베트(西藏·서장)불교(라마교)를 믿는 몽고족(蒙古族)과 티베트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주로 티베트의 건축양식을 따라 지었다.
이곳은 황제의 집무실이다. 내부에 담박경성(澹泊敬誠)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담백한 마음으로 공경과 정성을 다해 깨끗한 마음을 닦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현판의 글씨는 새긴 것으로 정교한 조각 자체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내부는 좌식구조로 천정 등 내부구조는 장식이 매우 섬세하다.
황제의 침실인 연파치상(烟波致爽)은 피서산장의 36경 가운데 제1경이라고 할 만큼 건물 장식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1860년의 치욕을 더 생각한다. 1860년 중국은 ‘제2아편전쟁’에서 패배한 뒤 베이징조약을 맺었다. 이곳은 우리에게도 치욕의 장소다.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연암 박지원(朴趾源)과 그 일행이 무릎을 꿇고 청나라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삼배구고례(三拜九叩禮)를 했던 곳이다.
이곳은 서지서옥(西知書屋)이다. 1711년 강희제 때 지었을 때만 해도 의청광(衣靑光)이라 해서 황제가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지만 건륭제에 이르러 외국의 국빈급 사신이나 친분이 있는 신하들과 만나는 장소로 쓰였다. 서양을 아는 책이 있는 건물이라는 뜻의 건물 이름도 건륭제 때 이뤄졌다. 내부는 중국을 상징하는 빨간 카펫과 각종 장신구 등을 볼 수 있다.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조선을 출발하여 이곳에 도착하여 건륭제를 만나는 과정을 적은 기행문이다. 조선 사신단은 열하에서 1780년 음력 8월 9일부터 14일까지 6일간 머물렀던 연암 박지원의 기록이 열하일기 제6권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에 담겨 있다.
침실 관람이 끝나고 안으로 들어가니 옛날 지붕의 건물이 보인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날로 다행히 많이 붐비지는 않았다.
피서산장의 전각 사이는 이렇게 마당에 소나무를 심고 바닥에 박석을 깔았다. 오른쪽은 구간조방(九間照房)의 와기전(瓦器展)과 법랑전이다.
황제가 사라진 지금 청나라 때 수집된 황실 생활용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도자기 30여점 정도가 전시되어있다.
침궁 서쪽에 있는 서소(西所,)에서 함풍제(咸豊帝)의 귀비였던 서태후가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고 자희태후(慈禧太后)가 묵었던 곳 자희거가(慈禧居家)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안에는 자희태후(慈禧太后)의 유품 자희태후(慈禧太后)가 입었던 의복과 사용했던 수저와 젓가락이 전시돼 있다.
피서산장의 북문과 후문-수운문(後門-岫雲門) 앞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황제의 여름별장이다. 궁(宮)과 피서산장은 입구는 분리돼 있다. 중국은 한번 입장한 곳은 뒤로 돌아서 나오는 경우가 없다. 그러므로 관람 전 중간에 돌아 나올 생각이라면 애초에 입장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입·출구 또한 항상 다르다.
본격적으로 피서산장을 둘러보자. 호수는 드넓어 시원스럽고 호숫가에 늘어진 버드나무 잎들은 낭창낭창한 양귀비(杨贵妃)의 허리처럼 아름답다. 좀 무겁고 답답한 공간 행궁을 지나니 탁 트인 초록색 정원에 깜짝 놀랐다. 이곳부터가 진짜 피서산장이라는 느낌이 든다. 세계문화유산인 ‘避暑山莊’이란 글씨가 바위에 크게 새겨져 있다.
북쪽으로 펼쳐진 정원 구역은 607,000㎡ 규모이며 서쪽의 초원과 동쪽의 산림 구역으로 나뉜다. 그중 초원 구역에서는 말의 경주가 열렸고 나머지는 특별한 손님을 모시는 정치적 접대 장소로 쓰였다. 이곳의 이름은 ‘만 그루의 나무가 있는 정원’ 만수원(萬樹園)이다. 이곳은 피서산장의 동남쪽에 위치한 상호(上湖)다.
여의호(如意湖)는 건륭 36경 중 제4경이다. 피서산장엔 건륭제가 36경의 절경을 꼽아두었는데 36경의 절경을 하나하나 음미하는 데는 며칠도 부족할 것 같다.
거북이 형상 모양의 바위로 관광객들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가 많고 이곳에 앉아서 호수의 절경을 보면 아름답다. 호수를 보니 여유 있게 소풍 와서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수심사 왼쪽에 있는 하호(下湖)다. 호수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관광용 조각배를 탈 수 있다.
아치형의 다리가 아름답다. 연인들끼리 데이트하기 좋은 코스다. 멀리 보이는 팔각 구층탑은 원래 절이었는데 현재는 탑만 남아있다. 중국의 4대 정원인 만큼 규모가 큰 호수는 다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끼고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데만 1시간 넘게 걸린다. 이곳은 너무 넓어서 처음 오면 출구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
이곳은 매우 맑아 ‘물 맑을 징’을 써서 징호(澄湖)로 불린다.
하호(下湖)를 지나다가 푸른 연못의 매력에 흠뻑 빠져본다. 열하전 앞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열하전 앞에 지그재그로 된 다리 또한 재미난 거리 체험중 하나다.
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가니 갈림길이 계속 나온다. 이곳은 갈림길이 너무 많아 처음 온 사람들은 길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처음 이곳을 왔을 때 2시간여를 헤맸는데 이곳의 지리를 물어볼 때 절대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지도만 보고 이동해야 헷갈리지 않으며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곳을 처음 온 사람들이어서 오히려 출구를 찾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입장 전 매표소에서 지도 지참은 필수다.
피서산장의 열하천(熱河泉)은 겨울에는 일반 강물보다 온도가 높을지도 모르나 여름엔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피서산장은 휴식처가 많다. 곳곳에 쉼터를 볼 수 있다. 여름엔 정자 안에서 햇볕을 피하여 저녁엔 산책도 하고 낮엔 정자에 누워 낮잠도 즐기며 마치 황제가 된 것처럼 여유로운 휴식을 즐겨보면 좋을 장소다. 강희제와 건륭제가 이곳을 왜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장소다. 답답한 정치를 벗어나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을 황제를 상상하며 산책로를 거닐며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본다.
푸른 연못 사이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면 탁 트인 전경과 함께 마음 또한 탁 트일 것이다.
30분을 걷다보면 배타는 곳이 나온다.
그 바로 옆에 멀지 않은 곳에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위로 올라가면 올라갔던 길 다시 내려와야 한다. 이곳은 위에 절이 있고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장소다.
항상 일에 쫒기다 보니 올 여름에 갔다 온 곳을 뒤늦게 정리했다. 여름에 가야 할 곳을 늦가을에 소개하다 보니 독자들에게 면구스럽다. 하지만 내년 여름엔 더위를 피해 중국 황제가 머물렀던 청더의 피서산장에서 여유를 만끽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