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인천시 옹진군 해상에서 우리 해군과 해경이 출동하자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어선들이 선단을 이루며 대항하고 있다.
잊을 만하면 불거져 나오는 게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이하, 불법조업) 문제다. 세월호 사고로 해양경찰청이 해체된 이후 우리 해경은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에 제대로 대응을 못하더니 이번엔 해경의 고속정마저 침몰당하는 치욕을 당했다.
이에 대해 중국정부는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한국이 대국적 측면에서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처리하기를 바란다”며 “법 집행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반발했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의 이런 표면적 자세와는 달리, 중국 당국자들을 만나보면 크게 다른 태도를 보인다. 대국(大國)이라는 자존심에서 나오는 화려하고 강경한 겉모습과는 달리 개별적인 만남에서는 중국이 처한 현실에 입각한 다소 저자세의 실용주의가 주를 이룬다. 중국어선의 불법조업과 관련해 중국 정부의 간부들은 개별적인 만남에서는 “문제를 촉발시킨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나”라며 미안해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 겉과 속 확연히 다른 적 많은 중국인, 국가 간 관계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런 모습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비공개적인 모습에 불과하다.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개인 간 교제는 물론 국가적 교류 및 협상에 있어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중국 특유의 모습이다.
실제로 같은 시각, 우리 사회에 전달되는 중국 측의 공식적 자세는 중국 현지에서의 이런 개인적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우리 정부가 포격 허가를 내린 것에 대해 “한 국가 전체의 민족주의적 집단 발작”이라는 매우 자극적인 표현으로 반발하는 모습이나 “한국 해경이 중국 어선에 함포를 사용할 경우 보복을 초래할 수 있다”며 경고하는 모습 등, 그야말로 ‘방귀 낀 놈이 성 낸다’는 우리 속담처럼 적반하장에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우리 사회에 전달된 중국의 그와 같은 모습을 고려할 때, 우리가 경악해하며 더욱 분노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봐야 할 것이다.
◆ “불법조업 미안” 개인적 ↔ “함포 쏘면 보복” 공개적, 겉과 속 천양지차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으로 인한 한중 간 갈등이 일파만파로 비화하자 중국 당국자들은 중국에서 중국 정치를 강의하는 필자에게도 긴급 만남을 요청해왔다. 이들은 “지엽적인 사안인데 더 이상의 확대나 경제 문제가 정치 문제로 비화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방법을 내게 물었다. 필자는 “가해자가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이면서 어떻게 진정되기를 바라느냐”며 “무엇보다도 먼저 중국 측이 이런 모습을 탈피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중국 정부 관리처럼 일반 중국인들 역시 개인적으로 만나면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이 사태를 접한 중국인들은 대부분 “이런 일이 또 발생해서 유감”이라며 “불법 조업을 한 것은 중국이고 그로 인해 한국 해경이 피해를 입었으니 할 말이 없다”고 미안해하며 겸연쩍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보도되는 중국 사회의 모습은 이런 모습과는 달리 오만방자하며 막무가내인 모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중국인 대부분의 반응과 달리 한국사회에 전달되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왜 이렇게 다르게 되는 걸까?
중국어선의 횡포가 날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달 인천시동구 만석부두에 불법조업에 나섰다가 우리 해경에 나포된 중국어선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 환구시보(环球时报), 초강경 민족주의 고수
이면(裏面)엔 단연 환구시보가 있다. 환구시보는 이 문제를 매우 편협하고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있고, 우리 언론은 주로 환구시보의 보도를 인용해 보도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보도되는 중국 사회의 모습은 환구시보의 ‘위험한 프리즘’에 의해 오만에 가득 찬 적반하장 모습이다. 이를 접한 우리 국민은 더 분노하고 중국 언론은 이런 ‘격앙된 모습’을 중국 사회에 고스란히 전달함으로써 양국 국민의 민심은 급격하게 악화되는 모습이다.
◆ 환구시보, 민족주의에 편승, 경제적 이득 노리는 사실상 민간 상업지
환구시보는 왜 이리 편협한 보도를 할까? 중국 관영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기본적으로 ‘민간 상업지’다. 스스로 신문을 팔아 그 이윤으로 운영하는 신문이다. 관영 인민일보와 큰 차이가 있다. 대중에 영합해야 성공하는 상업지다.
수천 종의 언론매체가 있는 중국에서 생존을 모색하다 보니 국제무대에서 ‘강력한 중국, 위대한 중화 민족주의’를 적극 주창해 이를 기반으로 먹고 산다. 중국 내부에서조차 “편협한 민족주의 논조가 너무 심하다” “너무 중국 입장만 두둔해 국제문제를 바라봐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환구시보가 “비교적 소비수준이 낮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비(非)지식인 및 노동자들이 주로 보는 저급 상업지”라는 인식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 군부 장성이 설립, 총 편집인은 편협한 민족주의자
환구시보는 민족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중국인민해방군의 한 장성 출신에 의해 설립됐다. 총편집은 중국인민해방군 소속 난징(南京)국제관계학원을 졸업한 뒤 베이징(北京)외국어대에서 러시아문학을 배운 그는 민족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후시진(胡锡进·56)이 맡고 있다. 인민일보 기자로 입사한 후시진은 주로 러시아와 동유럽 지역을 담당하면서 보스니아 내전, 이라크 전쟁,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과 같은 전쟁을 담당했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그는 이를 “서구세계의 탐욕에 의한 처참한 전쟁”으로 집중 보도했다. 러시아와의 개인적 친밀감 등을 인정받아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러시아 방문에도 동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인생의 많은 부분을 구소련 및 동구유럽과 더불어 보내는 가운데 구소련 등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그런 그의 기본 철학이 중국 당국자의 말처럼 ‘친(親)러시아(Pro Russia) 반(反)서방(Anti Western)’ 시각을 갖게 한 셈이다. 이처럼 환구시보는 군부 설립자에, 강력한 민족주의 총편집인의 영향을 받아 편협하고 과격한 논조를 띠고 있다.
결국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식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자매지이긴 하지만 탄생 배경이나 주도 인물이 크게 다른 민간 상업지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이 때문인지 다루는 사안 또한 인민일보와 달리 과도하게 민족주의적 선동 성향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민일보의 자매지라는 형식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환구시보 보도=중국 정부 입장’이란 착각 속에 빠져 있다. 그로 인해 환구시보의 자극적 보도를 중국 전체의 여론과 중국 정부의 입장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서해 연평도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조업하다 우리 어민들에게 나포된 중국어선 선원들이 지난 6월 인천해양경비안전서 전용부두를 통해 입국해 조사차 이동하고 있다.
◆ 중국 정부, ‘창훙롄(唱红脸), 창바이롄(唱白脸)’ 강온 전략
그렇다면 중국 당국은 왜 환구시보의 이 같은 ‘과격한’ 보도를 그대로 허용하는 걸까. 중국에는 ‘창훙롄(唱红脸), 창바이롄(唱白脸)’이라는 말이 있다. 경극(京劇)에서 비롯된 말로 어떤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쪽에서는 “붉은 얼굴(红脸)”로 노래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하얀 얼굴(白脸)”로 노래한다는 것이다. 당초 붉은 얼굴은 정직, 호인(好人) 충신을, 하얀 얼굴은 사특, 간신을 의미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붉은 얼굴은 ‘강하고 거친’ 자세를, 하얀 얼굴은 ‘부드럽고 온화한’ 자세를 말한다. 결국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 강온 양면 전략을 동시에 구사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이번 불법조업과 관련해서도 중국 당국은 “붉은 얼굴=환구시보, “하얀 얼굴=외교부 표명”으로 강온전략을 사용했다. 강온양면 정책을 통해 결국 보다 쉽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이 양동작전의 목적이다. 하지만 이번엔 필자가 보기에 붉은 얼굴빛이 너무 강렬했다. 이번에 양국 및 양국 국민의 관계가 더욱 악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 계속되는 불법조업, 끊이지 않는 단속 마찰, 해법은?
먼저 우리는 중국 측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이나 과격한 주장 및 엄포에 위축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취하는 조치가 국제법에 맞고 합당한 조치라면 주저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실행하면 된다.
중국은 국가의 주권과 존엄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국가의 핵심이익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라도 단호하게 실행한다. 만약 타국 어선이 중국 해역으로 들어가 불법 조업을 한다면 중국은 경고나 나포는 물론 발포와 격침까지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당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처리’의 주문이나 ‘법 집행 남용 말라’는 협박에 무릎 꿇을 필요가 없다. 중국 정부의 이런 성명은 국내의 중국인을 향해 중국 정부가 해야 할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기본 의무’를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성격도 강하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취해야 할 조치를 단계적으로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취해나가면 된다. 중국 측의 불법행위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조치로 인한 양국 관계 악화는 불법을 저지른 측이 걱정해야 할 일이지 정당한 조치를 한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중국 어민의 불법조업 문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중국 정부와 한 차원 높은 협력과 공조를 전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의 어선의 불법어로 문제는 중국 정부도 관리와 단속에 매우 힘겨워하고 있다. 중국 정부로서도 이들 어민의 불법 어로는 국가의 체면 손상과 함께 관계국과의 관계 악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해경의 단속보다 더 중요한 게 양국 해양수산부의 어업구역 획정 등 근본적 대책 마련이다. 해양수산부는 더 이상 이 문제의 근본적인 책임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