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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미녀, 4대 추녀는 누구?

저우위보(周玉波) 중국 인민일보 인민망 한국대표 |입력 2016-09-26 19:09
◆ 중국의 4대 미녀란?

중국 역사상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양옥환(楊玉環)이란 4대 미녀가 있다는 건 동양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들의 영광과 굴욕은 다분히 당시 국가의 운명과 백성들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었다. 이 4대 미녀는 수천 년에 이어져 온 동양적 아름다움의 극치로 오늘날까지도 세인들에게 가끔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미녀는 비록 경국경성(傾國傾城), 즉 나라도 성도 무너뜨리는 미모를 가졌지만 최후의 운명은 대부분 끔찍할 정도로 비참했다. 오죽했으면 미녀를 두고 홍안박명(紅顔薄命, 여자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우면 명이 짧다), 천투가인(天妬佳人, 미인은 하늘도 질투한다)이라고 표현했을까? 이 4대 미녀에 얽힌 전설을 보면 그 당시의 시대상과 이들의 미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중국의 4대 미인도. 왼쪽부터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 ‘침어(浸魚)’의 화용(花容), 서시

춘추시대 말기에 월(越)나라에 도화(桃花)처럼 예쁜 얼굴을 타고난 서시라는 여자가 있었다. 어느 날 서시가 냇가에서 수건을 씻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물고기가 그의 미모에 놀라 헤엄치는 것을 잊었다고 한다. 헤엄치는 걸 까먹었으니 물고기가 물 아래로 가라앉는 건 당연했다.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은 서시의 미모를 두고 ‘침어(浸魚)’라 했다.
그때 서시의 조국인 월나라는 오(吳)나라에 패망한 상태였다. 월왕(越王) 구천(勾踐)의 충신인 범려(范蠡)가 서시를 호색가인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바치고,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치를 태만하게 한 부차를 마침내 멸망시켰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나라가 멸망한 후 서시는 부차에 대한 죄책감으로 강에 빠져 자살하는 숙명을 면하지 못했다.
중국의 4대 미인. 왼쪽부터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 낙안(落雁)의 전설, 왕소군

중국 전한(前漢) 원제(元帝)의 후궁으로 절세의 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초상화를 그리는 화공(畵工)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아 추하게 그려진 왕소군은 끝내 황제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흉노의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에게 시집보내졌다. 흉노와의 화친(和親)정책 때문에 희생된 비극적 여주인공으로 그녀의 슬픈 이야기는 중국문학에 많은 소재를 제공했다.
어느 가을의 화창한 날, 변경을 나서 흉노 땅으로 떠나는 왕소군은 비통한 마음을 금하지 못해 비파를 연주했다. 이 비장한 이별의 곡에 기러기들이 날갯짓을 멈추고 떨어졌다고 해서 후세 사람들은 그녀의 미모를 두고 ‘낙안(落雁)’이라 했다.
중국의 4대 미인도 . 왼쪽부터 서시, 왕소군, 양귀비, 초선
◆ 폐월(閉月)의 미모, 초선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초선은 왕윤 부중(府中)의 가기(家妓·궁중 또는 관청이 아닌 개인 사가의 기녀)였는데, 그녀의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같았다고 한다. 동탁이 포악하여 한나라 황실이 위태로워지자 왕윤(王允)이 초선에게 연환계(連環計)를 사용하여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했다. 여포가 동탁을 죽인 뒤 초선을 첩으로 삼았지만, 조조(曹操)가 여포를 사로잡아 죽이고 초선을 허도(許都)로 보냈다고 한다. 야사(野史)에는 조조가 관우(關羽)에게 준 후 관우는 홍안화수(紅顔禍水, 예쁜 여자는 화를 초래한다)란 이유로 초선을 죽였다는 설도 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어느 날 초선은 뒤뜰 화원에서 달을 쳐다보니 달이 그 미모에 움츠려져 구름 뒤로 숨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은 ‘폐월(閉月)’이란 표현으로 그녀의 미모를 형언했다.

◆ 수화(羞花)의 주인공, 양옥환
당나라 현종(玄宗)의 비(妃). 절세미인에 총명하여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아 귀비로 책봉되었지만 황후 이상의 권세를 누렸다.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 도주하던 중 양씨 일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호위 군사에 의해 살해되었다.
양옥환이 금방 궁중에 들어갔을 때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화원에서 꽃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만발하는 꽃들에게 신세 한탄을 하면서 손으로 꽃을 만지니 갑자기 꽃이 부끄러워 잎을 말아 올렸다고 하여 ‘수화(羞花)’의 미모를 갖췄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정사(正史)도 그녀를 ‘자질풍염(資質豊艷)’이라 적었으며, 말하자면 절세(絶世)의 풍만한 미인이란 얘기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양귀비와 현종과의 비극을 영원한 애정의 곡인 《장한가(長恨歌)》로 노래한 바와 같이, 그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주인공이 되었다.
중국의 4대 추녀 중 한 사람인 황제 헌원씨의 4째 부인 모모
◆ 고대 중국, 미인 박대(薄待)?

이처럼 중국의 4대 절세미인은 ‘침어낙안, 폐월수화’란 상상력 넘치는 문학적 표현의 탄생에 기여했지만 그들의 운명은 하나같이 기구하고 비극적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미녀는 대개 화를 초래하는 존재’란 편견에서 찾을 수 있다. 또 역사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미녀는 왕조의 말기에 등장하면서 왕을 미색으로 현혹시켜 왕조의 종지부를 찍는 데 일조하기는 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방탕한 생활을 하여 중국 최초의 왕조 하(夏)나라를 멸망케 한 말희(妺喜), ‘꼬리 아홉 개를 가진 여우’의 화신으로 상(商)나라를 무너뜨린 달기(妲己), ‘봉화(烽火)를 태워 제후(諸侯)를 희롱’하여 서주(西周) 시대를 끝내고 춘추전국 시대의 도래를 앞당긴 포사(褒姒) 등이 수천 년 동안 미녀에 대한 중국인들의 편견을 강화해 왔다. 물론 이들 왕조가 멸망한 데는 왕들의 무도함과 나라가 직면해 있었던 외우내환(外憂內患)이 더 큰 이유였겠지만 말이다.
전국 시대 제나라의 무염군에 봉해졌던 4대 추녀 중 한 사람인 종리춘
◆ 덕행 높은 4대 추녀(醜女) 높이 평가

어쨌거나 고대로부터 중국인들은 미인을 좋아하면서도 항상 경계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점은 ‘미인과 바보는 형제간’이란 영국 속담과 ‘미인이란 보는 것이지 결혼할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유태인의 사고방식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고 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인을 얕잡아 보거나 멀리 하려는 경향이 두루 있는 것 같다.
반면에 중국문화에서 추녀에 대해서는 의외로 관용적인 나머지 선호까지 부추기는 경향이 예로부터 있었다. ‘추한 아내와 가까이 있는 밭은 집안의 보배다(丑妻近地家中宝)’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또 ‘전설시대의 모모(嫫母·추녀였으나 현명했던 황제(黃帝) 헌원(軒轅)씨의 넷째 부인), 전국시대의 종리춘(鐘離春·전국시대 제나라의 무염(無鹽)지방에 살았던 추녀. 얼굴은 못생겼지만 왕에게 제나라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자주 제시해 능력을 인정받아 무염군에 봉해졌고 나중에 황후가 됨), 동한시대의 맹광(孟光·후한 양홍(梁鴻)의 아내로 몸집이 크고 얼굴이 검은 추녀였으나 덕행이 높았다. 남편에게 음식을 올릴 때마다 밥상을 눈썹까지 들어올려 바쳤다는 거안제미(擧案齊眉)의 사자성어가 나오게 한 장본인이다), 동진(東晋)시대의 완씨(阮氏·동진의 명사 허윤(許允)의 아내. 허윤은 완덕위(阮德慰)의 딸에게 장가를 간 첫날 밤 완씨의 용모에 놀라 신방을 뛰쳐나왔지만 뒤에 그의 덕행을 알고 백년해로했다)’라는 ‘4대 추녀’의 이야기를 널리 보급하여 여자의 아름다운 외모보다는 내면의 재능과 훌륭한 품행을 훨씬 더 강조해왔다.
동한 시대의 추녀 맹광. 양홍의 아내였던 그는 거안제미 사자성어가 나오게 한 장본인이다.
◆ 사회적 성공을 꿈꾸는 중국여성, 최대한 중성화 추구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여자가 화장을 하지 않고 소박하게 입고 다니는 것을 좋게 보는 풍토가 있는 이유도 이러한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특히 관료사회나 공기업 등 제도권 내에서 여자가 승진이나 사회적 성공을 꿈꾼다면 자신의 외모, 복장, 언행 등을 여성이란 특징을 부각하지 않고 최대한 중성화해야 가능하다는 사회인식이 보편적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한국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동진시대 명사 허윤의 아내 완씨. 신혼 첫날 밤 남편이 도주할 정도로 추녀였으나 나중에 그의 덕행을 알아본 남편과 백년해로했다.
◆ 미인 더 대우받는 한국에서 4대 미인이 태어났더라면?

중국에 비해 한국은 미인이 훨씬 대우를 받는 나라인 것 같다. 현실적으로 미인이라면 모든 게 용서가 된다는 사회적 인식도 암암리에 작용하고 있다. 미인을 선호하고 외모의 미를 추구하는 사회적 풍토가 한국을 성형대국으로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한국의 성형인구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인구대비 성형수술 인구도 이미 세계 정상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예뻐지면 그로 인해 받는 사회적 인정과 혜택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국제미용성형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1년 인구 1000명 당 성형수술을 한 사람이 13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그리스, 3위는 이탈리아, 4위는 미국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중국의 4대 미녀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운명이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상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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