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최승호의 중국 속 우리 민족

조선족 막일꾼에서 고향의 농민 갑부로

최승호(崔勝虎) 길림신문 취재부장|입력 2016-08-23 16:08
김승철 씨가 자신의 논에서 막 이삭이 올라오려는 벼를 쓰다듬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黄粮碑마을에서 녹색입쌀만 고집하는 귀향노무자 김승철

유기농 제품, 녹색농산물이 총애를 받는 가운데 짝퉁 유기농 제품과 짝퉁 녹색농산품들도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국민들의 밥상을 불안하게 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녹색입쌀의 질을 보장하고 그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쌀을 다 팔지 못하더라도 믿음성 없는 회사에는 판매를 맡기려 하지 않으려는 한 조선족 농장주가 있다. 그가 바로 창춘 시 쥬우타이 구 다무 진 신선 촌에 살고 있는 김승철씨다.

1976년, 지안(集安-옛 고구려 국내성 일대) 시에서 출생하고 치다무 진 신선 촌에서 자란 김승철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1997년에 한국노무를 나갔다가 1999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2001년에 또 일본노무를 떠나 일본에서 돈지갑을 만드는 공장에서 거의 7년간 일했다.
김승철이 일본 노무를 마치고 돌아온 2007년의 신선 촌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대부분 조선족농민들이 고향을 떠났고 1000명에 가까웠던 고향 사람들 가운데서 겨우 7, 80명밖에 남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고작 10명도 될까말까 했다. 조선족 농민 모두가 한족에게 땅을 맡겼고 일부는 살던 집까지 한족에게 팔았다. 원래의 조선족만 모여 살던 마을이 이제는 여러 민족이 함께 사는 혼합촌으로 되었고 농사짓는 조선족 농민은 한명도 없었다.

선조들이 땀 흘리며 일구어낸 비옥한 땅이 한족에게 임대되고 농약과다사용으로 수토질이 나빠지고 토지임대료도 마음대로 정해져 한 무에 100여 위안(1만7000원 좌우), 200여위 안씩 밖에 안 되였다.

이 모든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김승철은 귀향창업으로 농사일을 해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농사일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그였다. 김승철은 2008년과 2009년의 2년 시간을 들여 조선족 농민들이 두고 간 땅을 모았다. 그는 한집 두 집 조선족 농민들의 집을 찾아다니고 외지나 한국노무를 떠난 농민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의 의향을 내비쳤다.

임대기한이 지나지 않은 한족 농민에게는 임대료를 더 주고, 계약체결기한까지 농사를 지으려는 한족농민에게는 토지를 조절해주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들여 2010년에 이르러 그는 55ha의 토지를 넘겨받았다. 2010년 김승철은 자기돈 60만 위안(1억 원 상당)에 친척친구들한테서 빌린 60만 위안으로 55ha의 토지를 임대맡았다.

농사경험이 없고 농업기술지식도 없는 그였지만 열정 하나로 농사일에 접어들었다. 비록 진의 농업기술원의 도움을 받고 농사를 지었지만 첫해는 생산량이 높지 못한데서 토지임대비용, 농기계비용, 노무비용 등을 빼고 나니 남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밑진 셈이다.

이듬해인 2011년에 그는 70ha의 토지를 임대 맡았고 그해에 순 이윤 40만 위안을 뽑았다. 그후 임대 면적을 점점 늘여 현재까지 110ha의 논을 도급 맡았다. 농사에 종사해서 4년만인 2013년, 김승철은 중앙 농업부로부터 전국알곡생산대호(大户)란 증서를 발급받았다. 2014년 11월 창춘 시 쥬우타 이 구치다 무에서 황량비를 발견, 문헌 고증에 따르면 황량비는 청나라 광서 10년인 1884년에 세워졌는데 비문과 역사문헌의 기재에는 치다무 진을 대표로 하는 송화강 유역이 당시 황궁알곡생산지역이었다고 한다.

신선촌 노인들은 치다무 지역은 토지가 비옥하고 강수량이 충족하며 일조시간이 길고 무상기가 긴 특징이 있어 벼 생산에 알 맞는 지역이라고 늘 말했단다. 치다무 진의 지리우세를 빌어 김승철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생산량은 높아지지만 수토질을 확보하고 녹색입쌀생산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김승철은 굳이 유기비료만 사용하고 있다.

관개용수도 우두산 저수지물을 쓴다. 따라서 생산원가도 높아져 당지에서의 판매가격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란다.
김승철은 지린(吉林) 쥬우타이(九台) 치타무(其塔木)에서 김(金)씨 성을 가진 농민이 지운 입쌀이라는 의미의 길구기금 (吉九其金)표 녹색입쌀증서를 국가에 신청, 요즘 곧 발급될 것이라며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올해 신선촌 마을 당지부서기, 촌주임(촌장)으로 당선된 김승철은 180m 깊이의 지하수를 뽑아 촌민들에게 상수도를 놓아주어 혼탁한 물을 마시던 마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김승철은 "내년에는 국가개발에 징용된 신선촌의 40ha 되는 토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170ha 되는 촌의 토지전부를 도급 맡게 된다. 또한 녹색김치공장을 세워 촌민들의 수입을 더 올릴 타산이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도시 여자를 아내로 맞고 슬하에 아들 둘을 둔 김승철은 어머니를 모시고 오늘도 행복하게 고향땅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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