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성자역 매표소이다. 이곳을 지나야 북경의 궁이란 궁을 볼 수가 있다. 이화원은 북경 서북 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원이자 공원인 이곳에 처음 공원이 조성된 것은 12세기 금나라 때 지은 작은 정원을 시작으로 명조 중엽에 만들어졌으며 청조 건륭제가 많은 건물을 세우고 정원을 꾸미었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으며 이화원의 면적 3/4가 호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곤명호라 한다. 곤명호는 인공호수이며 오늘날 같이 대규모로 된 것에는 청나라 건륭황제와 서태후의 공이 매우 크다. 이화원의 원래 이름은 청의원인데 1750년 청나라 건륭황제에 의해 공사를 시작하였다. 정원 양식의 궁궐을 건축하였는데 곤명호는 기존의 작은 연못을 확장하여 중국 항저우의 서호를 모방하여 만들었다. 청의원은 1860년 1900년 서구 열강에 의해 공격을 당하여 1886년부터 1902년까지 서태후에 의해 재건축 되었다. 서태후는 이곳을 1888년 이후 이화원으로 개명하고 서태후의 여름 피서지로 활용된 곳이다.
이화원 정문에 도착하니 입장하려고 줄을 서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이화원은 들어가는 입구가 여러 곳인데 이곳은 문창원이다.
잠시 표를 끊기 위해 매표소 앞에서 순번을 기다린다. 평일은 관광객들이 너무 많지 않아 이화원 관람이 순조로운데 휴일은 그와 정반대로 많은 인파 때문에 사람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이화원은 입구가 2곳인데 그중 한곳이 이곳이다. 다른 입구는 입구 문에서 왼쪽으로 5분정도 걸어가야 이화원의 후문을 만날 수 있다.
매표소 옆에 있는 이화원 지도이다. 자세히 보면 이화원에 내부 구조를 설명한 지도인데 중국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보기 어렵겠다. 그러므로 중국여행을 올 때 여행 중국어 공부는 필수이다.
왼쪽에 있는 것 사자상처럼 생긴 것은 여자의 자상이다.
정문을 지나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궁처럼 생긴 이것인데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
문창각이다. 문창원을 지나면 바로 앞에 문창각이 보이는데 거대한 모습은 이화원 내 6개 성곽 건물 중 최고의 규모를 자랑한다. 호수 기슭에 위치한 문창각은 건륭황제 때 창건되었으나 전쟁 때 소실되고 광서제 때 재건축 되었다.
본격적인 이화원 역사이야기가 시작된다. 이곳을 지나면 이화원의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지춘정을 지나.. 앞에 보이는 누각은 지춘정으로 지춘정 앞에서 보이는 연꽃들은 이화원의 경치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이곳은 이화원에서 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이화원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이다.
정원으로 가는 입구를 지나 15분 정도 걸어가면 이화원 정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오는데
비가 살짝 내리는 날씨에 하늘이 금새 어두워졌다.
많은 관광객들이 들어오자 전통 옷 사진 촬영 상점 가게 사장님은 직접 나와 가게 홍보를 시작한다. 1컷을 중국 전통 의상인 치파오 옷 한 벌 빌려 입고 기념촬영 하는데 1인 100위안이다. 싼 가격은 아니지만 여행에서 남는 것은 역시 사진뿐이다. 중국에 오면 치파오 한번은 입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화원 정원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마치 박쥐가 날고 있는 모양을 한 듯 박쥐가 매달려있는데 박쥐가 있는 자체가 복을 준다 하여 위에 글씨를 보면 “복” 이란 글자가 들어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호수는 산 자체에서 공중에서 봤을 때 하나의 복숭아 모양이 나온다고 한다. 이 산 자체를 공중에서 봤을 때 박쥐가 날고 있는 모양을 형상화 하고 있는데 중국 사람들은 무엇을 만들 때 항상 의미를 두고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은 이화원 정원 안으로 들어가는 곳 장랑이다. 장랑은 서태후의 거처 낙수당에서부터 이어지는 728m 에 이르는 긴 화랑으로 이화원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소이다. 불교신자였던 서태후는 불공을 드리러 갈 때나 개인적인 산보를 이용할 때 애용했던 곳으로 그 당시 서태후가 걸었을 이곳을 지금 이렇게 걸어보러 이동한다.
안으로 들어오니 벌써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관람중이다. 이곳을 걸으며 서태후가 산책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잘랑은 이화원을 떠날 수 없게 만든다. 이곳을 호수 옆쪽으로 지붕을 세워 길게 만든 이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책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이다.
이곳은 서태후가 예전에 흥을 즐기던 곳으로 춤을 자주 추었다고 한다. 황제는 이곳에서 서태후를 만나 사랑을 하였다 한다. 서태후는 그 당시 기준으로 매우 당대 최고 미인이었으며 요즘 기준과는 달리 옛날 그 시대에는 뚱뚱하고 살집 있고 엉덩이 큰 여자가 미인이었다고 한다.
서태후 시절 그림을 이곳 정자 위의 벽화 위에 담았다. 초기에 장랑은 건륭황제가 어미니
효성현황후의 산책을 돕기 위하여 만든 것인데 건륭황제는 바깥 순회를 나갈때마다 항상 어머니와 동행하였는데 어미니와 같이 가지 못할 때에는 대들보에 그림을 그려 보여주었다고 한다.
화랑의 대들보에 그려진 다양한 그림은 풍경, 민속, 신화 속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 자랑은 하나의 작은 갤러리 같은 존재이다. 그림이 그려진 대들보의 수는 무려 14,000여개라 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똑같은 그림은 한 장면도 없으며 이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고전소설이나 삼국지에서 많이 본 중국의 4대 소설 “서유기” 와 “삼국지” “홍유문” “수호지” 이다. 처음부터 마지막 끝까지 전부 그림으로 이야기 되어있으며 그때 당시 건륭 황제 때 있었던 그림들은 지금은 이곳 이화원이 재건된 이후 없어졌다. 서태후의 이화원에 있는 그림은 현재 예전 그림 위에 복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지금 현재 화랑의 대들보 위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이다.
전체 면적이 무려 88 만 평에 이르는 이화원은 정말 규모가 대단하다. 넓은 규모만큼 이화원을 제대로 보려면 편안한 복장과 충분한 시간은 필수. 그림을 자세히 보면 “삼국지” 그림이다. “유비, 관우, 장비” 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을 그림으로 묘사했다.
이곳은 이화원의 배운전이다. 이화원의 중심이며 배운전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등산이 필요하다. 패키지여행 코스로는 시간상 잘 안가는 코스이기도 하며 이화원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배운전은 서태후가 쉼터로 만든 곳인데 막상 올라가면 입구 계단은 쉼터를 연상할 수 없게 만들지만 정상 위에 올라가면 탁 트인 웅장한 모습에 잠시 경치에 빠져든다. 중국인들은 왜 이 높은 곳에 건물을 지었을까? 그 당시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 건물을 지었을 텐데 청·일 전쟁 중에 이 많은 건물을 지었으면 전쟁의 패망요인은 이것만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중국인들은 과연 이 이화원을 어떻게 생각할지 매우 궁금하다. 그저 단순히 아름다운 인공호수로만 생각하는지 아니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이화원을 명소로 만들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운휘옥우 패방
배운전 맞은편 호숫가에 서 있는 운휘옥우 패방이다. 이러한 화려한 건축물이 내포하는 의미는 “구름과 노을과 궁전이 서로의 빛을 받아 함께 빛난다”라고 한다.
서태후 별장을 가기 위해 이곳에서 배표를 사야한다. 배표를 사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 바로바로 구입 가능하다.
대부분 배 입장권을 따로 끊으면 비싸다 하는데 이곳 역시 4인, 6인 개인으로 올 시에는 배 표가 매우 비싸다. 그러므로 단체 패키지여행에 와서 선택 관광으로 배표를 구입 하는 것이 매우 이득이다. 보통 패키지로 와서 선택 관광 하면 비쌀 것이라 인식들이 많이 되어 있는데 보시다시피 개인적으로 표를 구입하는 것이 훨씬 더 비싸다.
혹시 선착장 가는 길을 모른다면 이 표지판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이화원의 하이라이트인 서태후의 별장을 보러 가려고 배를 타려는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선착장으로 내려오니 이화원의 많은 배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배를 타고 넘어가야 갈 수 있다. 배 요금은 1인 인민폐 10 위안, 한국 돈으로 약 1800원 정도이다. 이 요금은 패키지여행에서 선택 관광으로 배 이용 요금이다.
이화원에는 여러 가지 배가 있으며 무슨 배에 따라 사람 인원에 따라 가격이 조금 다르다.
이화원 안에는 나룻배, 황실 용을 담은 배, 바나나 배등 여러 종류가 많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온다면 본인이 선택하여 탑승할 수 있다.
곤명호는 이화원 전체 넓이에 약 70&를 점유하고 있는데 15년에 걸친 대 공사 끝에 만들어진 인공호수이다. 땅을 파서 만들었을 인공호수라고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당시 엄청 큰 공사였고 여기서 파낸 흙과 돌은 만수산을 쌓는데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10분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와서 배에서 내리니 바로 보이는 이곳은 서태후의 별장이다.
100살이 넘은 불황각은 기도를 하기 위한 곳으로 만들어졌다. 불황각은 이화원의 상징 같은 건물로 이화원 내에 가장 크고 아름다우며 만수산 중턱에서 웅장한 모습을 과시한다. 서태후 얘기를 잠깐 전하자면 서태후는 원래 후궁 출신으로 왕이 처음 합궁 하는 날부터
이 년 동안 후궁만 천 명이 넘는 궁궐 안에서 서태후를 찾아 주지 않아 서태후는 내시를 매수하여 왕이 좋아하는 것을 세 가지 물었다하여 첫 째로는 왕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둘째로는 왕이 밤마다 어디로 가는지 ,셋째로는 왕이 누구와 가까이 지내는지 물었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감옥으로 쓰여 졌다고 하는데 정확한 용도는 그 당시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서태후의 별장 안에 있는 서태후의 초상화. 서태후는 자신이 늙는 것을 매우 싫어하였으며 궁녀들이 자신의 머리를 빗어 내릴 때 머리카락이 아래로 떨어지면 바로 참형에 처했을 만큼 잔혹하기로 유명하였다. 이에 한 궁녀는 서태후의 머리를 빗으며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옷고름 속에 서태후의 머리카락을 숨겨 넣었는데 이를 알아차린 서태후는 그 궁녀가 가상하여 후에 서태후의 옆에 두어 서태후의 머리를 유일하게 만질 수 있었다고 한다. 서태후 얘기를 잠깐 전하자면 서태후는 원래 후궁 출신으로 왕이 처음 합궁 하는 날부터 2년 동안 후궁만 천 명이 넘는 궁궐 안에서 서태후를 찾아 주지 않아 서태후는 내시를 매수하여 왕이 좋아하는 것을 세 가지 물었다하여 첫 째로는 왕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둘째로는 왕이 밤마다 어디로 가는지 ,셋째로는 왕이 누구와 가까이 지내는지 물었다고 한다.
서태후를 모셨던 내시
이에 내시는 본인에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다 하여 서태후의 요구를 들어 주었고 하루는 서태후가 궁궐 마룻바닥에 나와 왕이 좋아하는 가야금을 연주하는데 왕은 그 소리를 듣고 내시에게 이르기를 오늘밤은 저 음악 소리가 들리는 곳에 묶겠다하여 서태후는 왕과 혼인한지 이년 만에 왕의 얼굴을 그 날 처음 보게 된다. 왕실에 후손이 필요했던 그 때 당시 서태후는 왕과의 하룻밤에 아기를 갖게 되고 왕의 후손으로 손자를 처음 얻게 되었으니 그 아들이 후에 세자로 책봉되고 서태후가 왕의 자리에 앉히게 되는데 왕은 몸이 쇠약해 삼심 오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되니 ..그 때부터 서태후가 아들을 왕좌 자리에 앉히려 서태후의 정권이 시작이 되니.. 서태후는 중국 역사상 가라 오래 황좌를 지키고 있던 인물이다.
서태후 별장을 둘러보고 떠나기 전 아쉬운 마음에 잠시 뒤돌아 찰칵해본다.
이 다리는 이화원 내에 가장 긴 다리 십칠공교이다. 멀리서 봐도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볼 수가 있고 이것은 청나라 건륭 때에 세워진 다리이다. 곤명호 한 가운데에 떠 있는 작은 섬으로 남호도를 연결하는 돌다리로 약 150m 길이를 자랑한다. 교각과 교각 구멍사이에 17개의 구멍이 있어 십칠공교라 부르는데 난간 기둥을 걷고 있자니 발걸음이 부르르 떨리지 않을 수 없다.
이화원 곳곳 내를 지키는 수호신은 마치 나를 지켜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 감사했다. 보통 수호신은 등에 엎고 있는 수호신은 보기가 쉽지 않은데 자금성과 이화원에서는 찾아 볼 수 있다.
수호신 사자상은 총 544마리가 있는데 똑같은 모습이 하나도 없기에 각 여행지마다 마음에 드는 사자상 앞에서 사진 한 컷 찍는 것이 요즘 기념사진의 유행이 아닐까 싶다.
다리 위를 걷다보니 많은 관광객들 사이에 가려진 볼거리가 있었다.
보통 흔치 않은 광경이지만 이곳 이화원에서도 자주 볼 수 없는 풍경으로 연을 날리는 분이 계셨다.
똑같은 연을 동시에 3개 날리는데 하늘에 떠 있는 연은 마치 이화원에 관광 오는 관광객들을 반겨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연의 주인은 연을 직접 만들어 가져왔다고 한다.
서태후의 별장이었던 이화원은 인공호수 중에 넓고 아름다운 곳이다. 이화원에 앉아서 호수를 바라 보고 있노라면 서태후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다리 아래에서 뱃놀이 중인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서태후 별장 투어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서태후가 활동했던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것은 물속에서 뽑아온 돌로 부자가 되는 바위라 한다. 소원이 있다면 이곳에 와서 한번 빌어보자!
중국에는 오리지널 용이 한 마리 밖에 없다. 자금성에 가보면 볼 수 있는데 책에는 치린 (기린) 한국에는 학대가 있으면 중국에는 기린이 있듯이 뿌리는 사슴 뿌리 머리는 용머리, 발톱은 소의 발톱, 꼬리는 사자 꼬리로 온몸에 비늘을 두른 전설적인 동물로서 궁에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버리는 수호신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갖다 놓은 것이다. 이것은 중국의 역사책이나 어디를 보아도 나와 있고 민가에서는 비수라는 동물이라 불렀다고 한다.
서태후의 집무실 옆에는 서태후가 만든 경극 공연장이 있는데 서태후는 경극을 좋아하므로 자기만의 경극 공연장을 이곳 이화원 안에 만들어 경극을 자주 즐겨봤다고 한다. 서태후는 중국의 경극의 역사를 펼친 인물로.. 벽화원이라고 부르는데 현재도 공연을 하고 있으며 공연시간은 미리 이화원에 물어보고 하루에 2번 정도 입장료는 인민폐로 100 위안 정도 한다
서태후의 침실 앞에 보면 3가지의 조각이 있는데 봉황은 성서로운 동물로 좋은 기운을 불어 넣어 준다는 의미이다. 이중 사슴은 평화를 상징하며..
화병은 중국말로 흐어핑이라고 하는데.. 화평하게 잘살자는 뜻이다.
서태후의 집무실
낙수당 전각의 명칭은 논어에 나오는 “지혜로운 자는 즐겁고 어진 자는 장수한다” 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글자로 서태후는 왕이 후궁실에 방문 하면 그 후 그 후궁 처소에 의원과 함께 찾아 진맥하여 임신을 하였으면 아이를 떼어 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한다. 이에 후궁들은 아이를 절 때 포기할 수 없기에 아이를 낳으려 발버둥 쳤으나 결국 서태후에게 발각되어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왕권을 틀어쥔 서태후는 이십 오년간 왕좌의 권위를 갖게 되었으니.. 그 때 왕이 삼 세였더라. 왕이 어리므로 서태후는 수렴청정을 대신 맡아 하는데 서태후 아들 광서제는 십 육세가 되자 친정을 하였으나 국정의 정권은 서태후가 쥐고 있었기 때문에 왕은 아무런 권한이 없었고 꼭두각시 왕일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왕은 왕권을 되찾으러 노력하였으나 서태후는 왕이 성장하기 전 대신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듬으로 왕은 서태후의 꼭두각시 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왕은 서태후 몰래 왕권을 찾으려 군사를 일으키려 했으나 서태후에게 발각됨으로 광서제를 자금성의 영대에 유폐시키고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 하였다. 서태후는 넓은 정원을 좋아했고 밖에서 산책하기를 좋아하므로 이화원 정원을 만들고 여름에는 이곳에 오면 정말 열사병이 걸릴 것 같다. 황제는 용, 황후는 봉황으로 상징되는데.. 첫 번째 들어가는 문은 인수문이라고 하여 서태후가 장수하라고 하는 뜻에서 지어 놓은 이름이다. 인수전은 서태후의 “만수무강”을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인수전 바깥에 “대원보경”이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안쪽에는 “수협인부”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그리고 3단 뒤에 거울이 있는데 목숨 “수 (壽) 자가 다른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이곳에 건륭황제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 산 황제로 89세까지 살았다. 그 당시 북경에서 62세면 오래 살았으므로 그래서 이화원의 주재는 모든 글자에 숫자가 들어가는데 후에 서태후가 인수문으로 바꾼 것이다. 착한 사람은 장수한다는 말이 있듯이 안쪽에 들어가면 돌이 하나 놓여져 있는데 하늘의 신선들이 살아서 인간 세상의 사람들의 이름을 수정이라고 하는데 중국 말로 송징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의 머리를 본 따서 만든 돌로 들어가면 위에 보이는 돌이 바로 수성세계 라는 돌을 볼 수 있다. 수성세계라는 돌은 직접 보면 무슨 돌인지 다시 보게 되는데...어떻게 보면 해골 모습도 보이고.... 어떻게 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데.. 지금 이 구역은 정치구역이다. 앞의 이 인수문은 자금성을 거쳐서 이화원에 왔을 때.. 정치를 하던 건물이다.
인수문 본래 이름은 “근정전” 으로 서태후가 재건하면서 인수전이라 칭하였다. 인수문 앞에 보면 황제의 상징인 동룡, 동봉황, 동기린, 동향로가 있다. 자세히 보면 동으로 된 용을 볼 수 있는데 동룡이라 한다. 오른쪽에는 봉황새, 동봉황, 원래는 용이 봉황새 자리에 있고 봉황새가 용의 자리에 있었는데 서태후가 나는 황제보다 높은 사람이다 하여 봉황새를 안쪽에다 놓고 용을 바깥으로 빼놓은 것이다. 이것이 인수문의 흥미로운 서태후의만의 이야기이다. 안쪽을 들여다보면 의자가 있고 의자 안쪽에 보면 벽면에 빼곡이 쓰여 있는 글자를 볼 수 있는데 무슨 글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단 한 가지 '수' 장수 할 수 자는 똑같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은 순금으로 되어 있으며 옛날의 순금은 현재는 보전되어 있지 않다.
이화원은 베이징의 황실 역사 정원으로 중국 정원 조경중에 최고의 걸작품이다. 일상생활의 쉼표인 여행은 이처럼 아름답고 고즈넉한 궁과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를 이룬 북경 명소 여행 코스 이화원에 들려 일상생활의 답답함을 벗어나 잠시나마 휴식을 취해보는 시간을 즐겨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밖으로 나오면
맛있는 시원한 음료를 파는 미니 자동차 상점이 있으니 이화원 여행의 시원한 끝은 시원한 물 한잔으로 장식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