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유광종의 한자와 중국어

박근혜-최순실 관계는 꾸이미(閨蜜), 中언론 표현

유광종(劉光鍾)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입력 2016-11-03 23:11
꾸이미(閨蜜)는 영어로 'Best Friend'로 번역되지만 일반적인 '베프'와는 차원이 다른 용어다. 사진은 중국 바이두의 '꾸이미' 설명.
   요즘 중국에서 유행하는 단어는 바로 ‘꾸이미(閨蜜)’다. 개혁개방 이후 1자녀 정책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면서 나오기 시작한 신조어로 여성 사이에서 그지없이 절친한 동성 친구를 말한다. 이런 단어가 최근 한국에서 엄청난 파장과 함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중국에서 말하는 ‘꾸이미’에 딱 들어맞는 단어라는 것이다. 중국 언론은 이 사건을 ‘한국대통령 꾸이미(閨蜜)의 국정 간여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다. 외국의 사건 때문에 중국에서 단어까지 유행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 여성 사이에서 잠자리 얘기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이가 꾸이미(閨蜜)


중국의 백과사전 바이두(百度)를 보면 ‘閨蜜’은 ‘규중밀우(閨中蜜友)’의 약칭으로 여성끼리의 특수 관계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설명한다.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진심이 통하고 , 비록 서로의 사회적 지위 및 처지가 아무리 차이가 많다 하더라도 서로 진심으로 축복하고 관계를 지속하길 원하는 사이를 말한다고 한다. 중국에서 '꾸이미'라고 하면 설령 자신의 남편, 남자친구와의 잠자리 얘기도 서슴없이 나눌 수 있는 사이다. 영어로는 'Best Friend'로 번역되지만 우리가 보통 말하는 '베프'와는 차원이 다르다.
중국에서 과거엔 이런 말이 별로 필요 없었다. 하지만 1인 자녀가 많아지고 나아가 누군가에게 깊은 내면의 고민을 상의할 수 있는 형제자매가 없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나온 단어다. 규밀이라는 단어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상황이 만들어낸 신조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남녀 사이에 이런 관계가 형성되면 ‘난꾸이미(男閨蜜)’라고 부른다.

◆ 규(閨)는 공개된 외부와 은밀한 내부를 가르는 문을 지칭


중국 고유의 단어라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앞의 글자 閨(규)는 우리가 자주 썼던 단어에도 등장한다. 바로 규수(閨秀)다. 이 낱말은 예전에 ‘남의 집 처녀’를 일컬을 때 심심찮게 쓰였다. 앞의 글자 閨(규)는 원래 집안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대개 집 중간에 놓인 문이다.
위치를 감안하면 이 문의 효용은 대개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에 있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해진다. 실제 사전 등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집에서 안팎을 나누는 문이다. 따라서 이 문의 안쪽은 집의 내원(內院)에 해당한다. 집의 여성 구성원들이 사는 곳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규수(閨秀)’는 집안 가장 깊은 곳에 사는 여성 가족 가운데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를 ‘빼어나다’는 의미의 秀(수)라는 글자를 붙여 호칭했던 말이다. 그렇다면 閨(규)는 어떤 문이었을까. 살짝 궁금해진다.
설명에는 ‘위가 둥글고 아래는 네모진 문’이라고 나와 있다. 門(문)이라는 글자 안에 들어있는 圭(규)라는 글자는 옛 왕조시절 임금과 대신들이 주요 행사 때 손에 들었던 옥기(玉器)의 일종이다. 그 모습이 위가 둥글고 아래가 네모진 형태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 옥기의 모습을 모방한 문을 閨(규)라고 했으리라는 추정이다.

베이징의 자금성, 자금성은 건청문을 중심으로 황제의 공개적 정사처리 공간인 외조(外朝)와 황제의 가족 및 개인 공간인 내정(內廷)으로 나뉜다.
◆ 조정(朝廷)은 정사를 돌보는 朝와 가족 구성원이 함께 지내는 廷이 합쳐진 말

그렇게 안과 밖을 가르는 시설은 옛 동양사회에서 늘 주목을 받았다. 임금이 머물면서 정사를 돌보는 궁(宮)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임금이 정사를 집행하는 곳을 외조(外朝)라고 했다. 그에 비해 임금이 가족 구성원이나 내부 일을 처리하는 인원들과 함께 일상을 보내는 곳은 내정(內廷)이라고 불렀다.
바깥에서 정사를 돌보는 외조와 안에서 일상을 보내는 내정을 합쳐 간략하게 부르는 말이 바로 조정(朝廷)이다. 베이징의 자금성(紫禁城)도 건청문(乾淸門)을 경계로 안과 밖이 나뉜다. 건청문을 중심으로 남쪽이 ‘외조’에 해당하는 영역, 그 북쪽이 ‘내정’에 해당하는 구역이다.
그럴 듯하게 지은 옛 동양의 보통 거주 공간도 마찬가지다. 바깥을 대표하는 건축이 바로 당(堂)이다. 이 당에서는 바깥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 치러진다. 외부에서 온 손님 등을 맞이해 식사를 베푸는 일은 물론이고, 제사와 혼례 등 집 밖으로부터 온 손님들이 함께 참여하는 의례 등이 펼쳐진다.
그 반대의 개념이 실(室)이다. 이는 집안에서 가장 내밀한 공간을 일컫는 글자다. 잠을 자는 침실(寢室) 등이 있어 웬만해서는 가족이 바깥을 향해 공개하지 않는 영역이다. 따라서 당실(堂室)이라고 하면 집안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
“사람이 당당해야 좋다”고 할 때의 ‘당당’이라는 말이 바로 ‘堂堂’이다. 외부를 향해 공개하는 건축이라 그 모습이 의젓한 ‘당(堂)’의 자태를 빗대 만든 말이다. 실(室)은 그와 달리 내밀하며 조용한 공간이라 전체적으로는 아담하며 깊은 곳이다.
중국인들이 ‘최순실 사태’를 일컬으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최 여인 사이를 閨蜜(규밀)이라고 적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집의 가장 은밀한 곳에서 서로 사귀며 깊은 우정을 쌓은 여성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입장을 발표하고 사과하고 있다.
◆ 사적인 친구 사이인 閨蜜은 사적인 내용만 상의하는 데 그쳤어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깊은 것은 좋다. 그러나 실(室)은 워낙 은밀한 영역이어서 지나칠 정도로 개인적인 공간이다. 그런 으슥하고 내밀한 공간에서의 관계가 밖으로 번질 경우에는 탈이 난다. 겉의 건축인 당(堂)의 모습처럼 당당하기는 쉽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야 달리 말할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 행정과 정치의 정점에서 국가와 사회,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며 최고의 공인답게 떳떳하고 밝음, 곧고 바름으로 당당해야 할 책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과 생각이 너무 안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안팎을 가리지 못하고, 분별없이 안쪽의 요소가 바깥으로 흐르게 만든 행위는 국정의 최고, 최종책임자로서 결코 할 일이 아니었다. 그로써 넘친 위기가 대한민국 전체를 흔들고 있으니 정말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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