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중국에서 살아보니…

극과 극, 중국에서의 병원 체험

김보형(金保亨) 킹앤우드맬리슨스 파트너 |입력 2016-08-23 10:08
베이징 중의의원 VIP 진료소 정문
   
며칠 전 엉덩이에 생긴 작은 뾰루지가 점점 커지더니 이젠 걸을 때도 불편할 정도다. 한국의 포털 사이트 검색을 시작했다. 증상이 심각하면 한국으로 가기 위해서다. ‘심할 경우 수술까지 해야 한다’는 안내 내용에 사뭇 겁이 난다. 베이징(北京)에 사는 한국인 지인들에게도 전화를 돌려본다.

“얼마 전 한 주재원이 중국병원에서 종기수술을 했는데, 살을 너무 깊이 긁어내 상처가 아물지 않아 고생하다가, 결국 귀국하여 2주간 입원했다더라. 함몰된 환부는 영구히 원상복구가 안 된다더라.”
들으면 들을수록 암담해진다. 이쯤 되면 한국행 항공편 예약에 들어가야 하지만, 이번 주엔 중요한 미팅이 많아 당장 한국에 갈수도 없는 처지다. 일단 지인이 소개한 중국병원, 북경중의의원(北京中医医院)을 찾아보기로 했다.

베이징 중의의원 접수창구는 마치 시장바닥을 연상케 한다. 창구마다 진단과 치료를 받으려는 환자들이 명절 연휴 열차표를 구하려는 귀성객처럼 넘쳐난다.
둥청(東城) 구 미술관 옆에 위치한 시립병원으로 나름대로 현대화된 종합병원이다. 널찍한 병원 로비에 들어서자 어마어마한 인파가 마치 명절 연휴기간 기차역 대합실을 방불케 한다.

안내하는 직원에게 어떻게 수속을 하는지 물어보자, 대꾸도 없이 손가락을 들어 반대쪽을 가리킨다. 불친절함이 거슬렸지만 중국에서는 이미 익숙한 모습이다. 반대편에는 전광판 아래로 전문가와 일반의로 나뉜 의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 밑에 있는 10여개의 창구마다 20~30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은 긴 줄이 보인다. 짜증이 밀려오지만 일단 줄을 선다.


베이징 중의의원 VIP 진료소 내부. 환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산하고 VIP 환자가 도착하면 곧바로 마춤식 의사가 곧장 달려오는 방식의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한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창구 직원에게 다급히 소리친다.
“엉덩이 종기 때문인데, 전문의 중 누구나 좋습니다..”
창구 직원은 우선 의료수첩부터 달라고 말한다.
“네? 뭔 수첩이요?”
“진료수첩이 없으면, 저쪽 창구에 가서 수첩부터 사오세요.”
인파를 헤집고 수첩 파는 곳으로 가니, 조금 전 창구만큼 줄이 길다. 0.5위안(대략 84원) 짜리 진료수첩을 사기위해 10여 분을 기다렸다. 다시 접수창구로 돌아와 기다리는 도중 병원을 소개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온 지 한 시간이 다돼 가는데 아직 접수도 못 했어요.”
“아니 그걸 왜 기다리고 서 있어? 병원 뒤편에 있는 VIP실에 가면 바로 치료해주는데….”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본관 뒤편 별채로 들어가니 매우 쾌적한 환경의 대기실이 보인다. VIP 진료는 접수비만 300위안이란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다시 복잡한 대합실로 돌아가긴 싫다. 접수비를 지불하고 나니, 간호사가 편안한 소파가 마련된 독실로 안내한다. 10여분 뒤 의사가 직접 방으로 와 진료를 해준다.
‌나의 ‘합법적 새치기’에 진료를 보다말고 달려온 의사를 기다리고 있을 다른 환자들을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지만, 독실에 편히 앉아 진료를 보는 호사를 누리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이런 시스템이 있었군. 진작 알려줬어야지.’
처방전을 들고 병원 내 조제실로 향했다. 아직 의약분업이 되지 않은 중국에서는 병원 내에 약국이 있다. 처방전을 내밀자 안쪽 창고로 들어간 간호사가 한참 만에 쇼핑백 두 개에 각종 양약과 한약을 한가득 담아 나온다. 약만 먹고도 배부를 정도다.
우여곡절 끝에 엉덩이 종기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완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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