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특별기고 /김한권

트럼프 美中, ‘개와 늑대의 시간’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입력 2016-11-14 12:11

해질 무렵 저 멀리서 흐릿하게 다가오는 것이 나를 지켜주는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대, 이것이 ‘개와 늑대의 시간(heure entre chien et loup)’이다. 중국은 점차 다가오는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친구가 될지 아니면 적이 될지 긴장하고 있다. 모습은 불확실한데 나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분명하니 점차 불안해진다.

◆트럼프 새 정부, 중국에겐 현재 ‘개와 늑대의 시간’

그간 중국 언론을 지켜보면 대중들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보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선호했다. 하지만 중국의 대미정책 관련 전문가와 관료들은 클린턴 후보를 선호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유는 역시 트럼프 당선자가 가진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트럼프 당선자의 정책기조는 간결하고 명확하다. 美대선 기간 중 많은 언론들이 대외정책으로는 ‘新고립주의’를, 경제·무역 정책으로는 ‘보호무역주의’라는 제목으로 대선기간 동안에 나타난 그의 주장들을 채색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표현을 뒤로하고 자신의 정책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더욱 압축시켰다.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산적한 내부의 문제를 제쳐두고 국제사회를 위하는 ‘경찰국가‘가 되어서는 안 되며, 중국과 불법 이민자에게 빼앗긴 일자리와 미국 중산층의 경제적 이익을 다시 찾아오는데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간결하고 명확한 메시지는 무너진 미국의 백인 중산층 그룹을 중심으로 미국사회의 밑바닥을 파고들었다. 금수저로 태어나 평생을 누려온 트럼프가 어떻게 이러한 바닥 민심을 정확히 알았을까? 자신의 상원의원 선거는 물론 남편과 함께 주지사와 대통령 선거를 치러본 힐러리 전 국무장관이 놓친 아래로부터의 요구는 美대선의 판도를 흔들었다. 특히 민주당의 전통적인 표밭이었던 미시건,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주 등 미국 북부와 중서부의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에서 트럼프는 승리를 이끌어냈다. 히스패닉 계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이들 다수가 거주하는 플로리다 주에서도 승리하였으니 미국 바닥민심의 강도를 알만했다.
백악관 새 주인 미국 대선의 승자가 가려진 9일 수도 워싱턴에 위치한 언론박물관 뉴지엄을 찾은 한 중국인 관광객이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뉴스를 보도한 여러 신문의 1면을 카메라로 찍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트럼프 미국, 중국에게 ‘긍정과 부정’ 동시 혼재

중국은 미국의 정치제도와 성향을 잘 알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확인된 다수 미국 시민들의 새로운 요구는 정책화 과정을 거칠 것이다. 또한 걸러지지 않고 정책적으로 허술한 부분들이 존재했던 트럼프 당선자의 주장들은 이제 미국 정부의 정책 시스템과 전문가/관료집단에 의해 정제된 언어와 세련되고 치밀해진 對내외 정책으로 탈바꿈 할 것이란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미국이 자랑하는 선진적인 정책 커뮤니티에서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목소리는 그간 클린턴 후보의 정책을 지지하는 논의와 함께 트럼프 당선자의 정책도 심도 있게 논의하는 모습이 이미 미 대선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북미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해온 국제정치학(International Relations)계의 전통적인 ‘국제주의(internationalism)’와 ‘고립주의(isolationism)’의 이론적 논쟁은 물론, 미국 외교협회의 회장인 리처드 하스(Richard N. Haass)는 이미 2013년 그의 저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국내에서 시작한다(Foreign Policy Begins at Home)’를 통해 미국은 산적한 국내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진정한 힘과 리더십을 갖추고 대외정책을 펼 수 있다는 주장을 해왔다.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트럼프 당선자의 정책 중 중국과 관련되어 중국의 지도자들을 긴장시킬 부분은 경제·무역과 군사·안보분야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분야 내에서도 사안별로 긍정적, 부정적인 분석이 나누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무역 분야에서 트럼프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칭한 것을 포함하여 수출 보조금, 지적 재산권 위반 행위 등 각종 무역 불공정/위반 사례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나아가 필요하다면 중국의 WTO 협정위반 소송을 제기할 것이며, 중국의 무역 불공정 관행이 계속된다면 중국산 제품에 무려 45%의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중국은 향후 미중 무역관계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트럼프와 첨예한 대결을 준비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미국의 트럼프 정권 시기에 추진되는 각종 무역 조치와 관련한 대상국가의 해당 사항 및 관련 절차
◆무역공세 거세겠지만 美 고립주의 선택으로 군사안보 중국에 이익

반면 국제무역의 기준과 질서의 경쟁에서는 천보(陳波) 화중과기대 국제무역학 교수와 진찬룽(金燦榮)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등이 트럼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반대함으로서 양국 간 갈등의 소지가 줄어들고, 중국이 추진하는 육·해상 실크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의 확대가 유리해지며,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FTAAP(아시아 태평양 지유무역지대)를 통한 지역경제통합 리더십에서도 앞서나갈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이는 미중 간의 무역부분에 관한 규범과 질서의 경쟁에서 중국이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트럼프가 경제·무역 분야에서 ‘신자유주의’를 버리고 ‘보호무역주의’를 선택한다면 나쁠 것이 없다는 표정이다.

군사·안보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의 미중관계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경제·무역 분야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높은 반면, 군사·안보분야에서는 대중 견제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점은 중국에게 유리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는 지난 1차 TV 토론에서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일본과 한국을 방어하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돈을 안 낸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다웨이(達巍)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미국연구소 소장은 트럼프가 한국과 일본에게 안보 무임 승차론을 꺼내들며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미군의 철수문제를 꺼낸 점은 향후 한미/미일 동맹에 빈틈을 찾을 수 있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진찬룽 부원장 또한 트럼프가 오바마 대통령의 ‘재균형 정책’을 계승하지 않는다면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안보적 압박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선기간 도중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존재감을 높이겠다고 강조한 점에 중국은 여전히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 조율을 앞에 둔 트럼프 정책의 불확실성


중국 정부는 11월 9일 외교부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을 통해 미국의 신정부가 중국 측과 함께 노력하여 양국관계를 건전하고 안정적으로 지속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축전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다가오는 트럼프 시대의 불확실성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는 모습이 묻어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을 통해 나타나는 우선적인 반응은 일단 강한 대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미중관계 전문가인 북경대 왕둥(王棟) 교수는 미 대선 직전인 11월 6일 워싱턴 포스트와, 인민대 스인훙(時殷弘) 교수는 대선 결과관련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만약 미국이 북핵문제나 통상문제에서 중국을 비판하고, 압력을 가하고, 처벌하는 조치를 가하다면 중국도 미국에게 대응 조치를 통해 보복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시진핑 지도부 2기를 구성하고, 정치적 세대교체가 나타날 2017년 19차 당 대회를 앞둔 중국 최고 지도부로서도 중국 인민들 앞에서 미국에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당선자는 중국산 저가 제품이 미국시장에 퍼지며 미국의 제조업이 타격을 입고 문을 닫았고, 이로 인해 많은 중산층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미국의 몰락한 중산층의 생각을 대변한다. 또한 그들의 정치적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며 상당한 정책적 추진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
‘미국산 제품을 사서 미국 일자리를 지키자’는 21세기물산장려운동이 확산되면서 ‘메이드 인 USA’ 마케팅도 뜨겁다.‘국기만큼은 중국산 말고 반드시 미국산을 쓰자’며 애국심 마케팅을 펴는 ‘메이드 인 USA 성조기’ 판매 전용 사이트도 많다.
◆ 트럼프 무역 정책과 공화당 무역기조는 달라

하지만 그의 대중 경제·무역과 군사·안보 정책의 방향은 이제 두 가지의 커다란 조율을 거쳐야한다.
첫째는 경제·무역 분야에서 자신의 보호무역주의적인 정책기조와 공화당 출신의 대통령으로서, 또한 공화당의 협력과 지원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공화당의 경제·무역 정책 기조와의 대립을 조정해야 한다.
둘째로 트럼프는 자신이 주창해온 ‘신고립주의’적인 군사·안보 정책의 방향과 미국 정부의 외교·안보 시스템에 의해 오바마 정부에서 장기적 전략의 일환으로 진행되어온 정책들과의 조율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그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 그리고 핵의 비확산 문제 등에 연관된 국제사회 현안들에 대한 개입의 정도를 세밀히 조율해야 한다. 트럼프가 제시한 강한 미국으로의 회귀는 국제사회의 리더십을 잃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트럼프의 신고립주의는 미국의 국익에 직접적인 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사안이나 지역에서의 과감한 미국의 역할 축소를 통해 전략적으로 중요성이 더해지는 부분으로 힘의 이동을 통한 선택과 집중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 ‘개와 늑대의 시간’ 오래 가지 않을 듯

트럼프 행정부에서 선택할 정책적 조율의 결과물은 아직 알 수 없다. 중국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으로부터 경제·무역 부분에서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군사·안보적으로 선택과 집중에 의해 중국에 대한 견제가 오히려 집중되는 상황이다. 반면 트럼프가 군사·안보적으로 느슨한 대중견제 정책을 피며, 경제·무역 부분에서 상호이익을 추구한다면 중국에게는 더없이 좋은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상황은 속단할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이 맞이한 ‘개와 늑대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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