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특별기고

'오토바이의 천국' 대만…좁은 국토 효율적 이용

이진수 한국수입이륜차환경협회 회장|입력 2016-10-26 01:10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의 출근길 모습. '오토바이의 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오토바이로 출근하는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일반 승용차는 찾아보기도 힘들다.
흔히 대만을 ‘오토바이의 천국’이라고 말한다. 올해 9월말 현재 대만의 오토바이 보유대수는 1450만 대. 3명 중 2명은 오토바이를 갖고 있다. 3700만 대의 오토바이를 보유한 베트남보다 적지만 베트남의 인구(9300만 명)를 감안할 때 인구(대만 2355만 명) 대비 오토바이 보유대수는 대만이 세계에서 단연 1위다.

‌◆ ‘오토바이의 천국’ 대만

대만에서는 출퇴근 때 대부분 오토바이를 탄다. 대만을 가보면 정장차림의 직장인과 학생, 자영업자 등 대부분의 시민들이 자동차보다 오토바이를 선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만의 오토바이는 도심 교통체증을 해소하는 핵심 교통수단이다. 출퇴근 시 ‘나홀로 승용차’로 교통지옥을 만드는 대한민국과 대조를 이룬다.
대만의 높은 오토바이 보급률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가장 큰 요인이다. 대만 정부는 좁은 국토면적(3만2980㎢)을 감안해 승용차보다는 오토바이가 경제성 있는 교통수단이라고 보고 다양한 지원 정책을 채택해 실시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오토바이를 새로 사는 소비자에게 한화로 1인당 약 20만 원을 지원한다. 이는 우리보다 앞선 ‘유로 5’라는 친환경기준을 충족하는 오토바이의 보급대수를 늘리기 위해서다. 일종의 친환경 정책 지원금이다. 10년 전인 2006년부터 환경파괴의 주범인 2행정 오토바이의 판매를 전면 금지했던 대만은 2019년엔 2행정 오토바이의 운행까지 금지시킬 계획이다. 친환경을 위한 정부의 강한 정책의지를 읽을 수 있다.
대만이 교차로엔 대부분 오토바이 전용 대기선이 횡단보도보다 앞에 따로 있다. 신호가 바뀌면 오토바이가 먼저 출발해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서로 엉키지 않게 하기 위한 차별화 정책이다.
  ◆ 오토바이 정책 지원 많고 기후도 한 몫

또 정부가 추진하는 도로운영 정책도 대만국민들이 오토바이를 선호하는 이유다. 한국과 달리 대만은 오토바이가 고속화도로 등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릴 수 있다. 2007년 배기량 550CC 이상 대형 오토바이가 달릴 수 있게 허용한 데 이어 2012년부터는 251CC 이상 오토바이도 다닐 수 있도록 허용했다. 유일하게 고속도로만 오토바이가 다닐 수 없다. 대도시 간 장거리가 아니라면 오토바이가 갈 수 없는 곳은 거의 없는 셈이다.
곳곳에 널린 오토바이 전용 주차장도 우리와 다른 모습이다. 상가와 공공건물, 사람들이 붐비는 공원 등 어디를 가나 오토바이 전용주차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실내 오토바이 전용주차장 하루 이용료도 평일 기준 30NTD(한화 약 1078원)으로 매우 저렴하다. 하루 주차비가 1달러도 채 안 되는 셈이다.
대만을 오토바이 천국으로 만든 배경엔 기후와 좁은 국토면적도 한몫 했다. 대만은 한국처럼 영하의 겨울이 없다. 타이베이(臺北)라도 영상 10도를 웃돌기에 빙판길이 있을 리 없다. 겨울철에도 오토바이를 타는데 별다른 위험이 가중되지 않는다. 또 국토면적이 좁아 자동차로 3, 4시간 달려야 하는 곳이 별로 없다. 웬만한 곳은 오토바이로 달려도 된다.
한편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실용주의적 국민성도 오토바이 천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대만사람들은 머리가 휘날리거나 옷맵시가 망가지더라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여성의 경우 설령 화장이 땀에 번져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교통신호 앞 자동차 대기선에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서로 어우러져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모습. 한국처럼 오토바이가 옆에서 얼쩡거린다고 경적을 울려대는 자동차는 없다.

‌대만의 오토바이 교통문화는 더욱 우리가 본받을 만 하다. 시내를 나가보면 오토바이는 물론 자동차 경적도 거의 듣기 어렵다. 그럼에도 교통질서가 잘도 유지된다. 대만에서 만난 교통국 관리는 “대만에는 오토바이 운전자를 배려하기 위한 오토바이 전용 교통정지선이 있다”며 “실제 도로주행 시 오토바이가 앞서가고 4륜 자동차가 그 뒤를 따르는 교통문화도 대만이 오토바이 천국이 되는 데 일조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오토바이가 ‘사망사고의 주범’이라고 ‘부정적 누명’이 씌워져 있지만 대만은 사고율 낮고 교통체증 없게 하는 녹색교통 수단이라고 불리고 있다.
대만의 오토바이 정책은 ‘바이크 선진국’답게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1990년대 중반 오토바이 완전등록제를 도입했고 운전자 안전을 위한 오토바이 종합보험제도가 시행된 지도 오래다. 사용신고제에 머물러 있으면서 종합보험 가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우리의 현실과 차이가 크다. 대만의 경우 2017년부터 오토바이에 ABS 장착을 의무화하는 등 이용자의 편의성과 안전성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 ‘오토바이 규제의 천국’ 대한민국

대한민국만큼 이륜차 규제가 많은 나라도 드물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클럽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국가 중 오토바이가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릴 수 없는 유일한 나라다. 거주이전의 자유처럼 도로 통행권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에 해당한다. 하지만 50년 가까운 정부의 규제 및 단속 위주의 정책은 이륜차 발전을 더디게 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이륜차 산업과 문화는 발전커녕 크게 후퇴했다. 자동차관리법상 같은 자동차인데도 이륜차의 도로이용권을 차별화하는 것은 공정성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규제강화 정책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이런 단속과 규제가 국민들에게 이륜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 ‘오토바이 사고율이 승용차보다 높다’는 진실 아닌 누명

오토바이의 교통사고율이 높다는 인식은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오명 아닌 누명’이다. 최근 10년(2005년~2014년)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전체 교통사고 219만8541건 중 오토바이 사고는 16만4364건으로 7.5%를 차지했다. 나머지 92.5%는 승용차와 승합차, 트럭 등의 사고다. 올해 6월 말 현재 한국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2146만4224대. 반면 오토바이는 약 200만 대로 추정된다. 전체 자동차 가운데 이륜자동차의 비율이 9.3%인 점을 감안할 때 오토바이의 사고율은 승용차보다 되레 낮은 셈이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사면 ‘과부 한 명 늘었네’가 농담처럼 회자되는 등 오토바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이런 통계수치와 무관하게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결국 오토바이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인식과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이 한국의 오토바이 산업을 퇴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은 사실상 오토바이 생산 업체도 하나도 없다. 대림 등 2개사가 오토바이를 생산하고 있지만 모두 해외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할 뿐 국내 공장은 아예 없다.
오토바이 전용 주차장. 대만에서는 이런 오토바이 전용 주차장이 상가, 아파트, 사무실 등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토바이는 주차 요금도 하루 1달러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교통수단도 경제성 따져야

하지만 대만의 사례에서 보듯 이륜차가 갖는 장점은 적지 않다. 먼저 경제성을 들 수 있다. 기름 1리터 당 55~60km를 달리는 125CC 스쿠터는 10km 안팎인 승용차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경제적이다. 배기량 200CC 오토바이 역시 리터당 주행거리가 40km에 이른다.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오토바이는 승용차보다 무려 4~6배의 연료효율을 가진 경제적 교통수단인 셈이다.
게다가 최근엔 오토바이의 성능이 향상돼 최고시속도 120~130km에 이른다. 오토바이는 주행 시 차선을 적게 차지한다. 다른 차량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고 교통체증을 해소하는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게다가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아 도로마모율도 낮다. 많은 예산을 투자해 도로를 건설, 관리 유지해야 하는 국가로서는 정말 고마운 교통수단인 셈이다.

◆ 최근 규제 일변도 오토바이 정책 개선 움직임

이처럼 이륜차의 장점과 긍정적인 요소가 많은데도 이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관련법과 제도정비 등 이륜차 문제의 총체적인 진단과 이에 따른 해법마련이 조속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등 정부당국이 적극 나서 자동차관리법 등 관련 법안을 손질하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점이다.
정부의 이런 노력을 계기로 경제성과 친환경성 등 이륜차만이 갖는 장점이 각광받는 시대가 활짝 열렸으면 한다. 이런 평가와 기대가 또 다시 실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이륜차 관련 협회, 각종 동호회 등 운전자단체, 일반국민 모두가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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